쫓는 자와 쫓기는 자(43)

 국영상점망과 협동단체 상업망이 풀어주지 못했던 지속적인 물자부족현상을 장마당은 풀어주었기 때문이었다.

 인민위원회나 당의 입장에서 보면 장마당은 고맙기 그지없었다. 모든 인민들의 경제적 기반과 자립능력을 뿌리 뽑아 인민들을 당의 둘레에 끌어 모으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있는 국영상점이나 협동단체 상업망이 풀지 못하는 만성적인 물자부족현상을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난 장마당이 해결해 주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지나치게 사람들이 몰려드는 것이 당으로서는 부담이 되었다. 지속적 물자부족현상이 빚어내는 인민들의 불평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중소도시의 도로변이나 공터에서 매일 오후 일정시간 장이 서는 것을 방치하다시피 놔두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국영상점과 협동단체 상업망이 영향을 받을 만큼 장마당은 대성황을 이루었던 것이다.

 당 일꾼들은 그동안 닦아놓은 사회주의 개조사업 성과들이 하루아침에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조바심을 보이면서 중앙당을 향해 지도서를 내려 달라고 수차 보고서를 올렸다. 이런 문건들이 결정적 역할을 했는지, 정 아바이로서는 확인해 볼 수 있는 길조차 없었지만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는 지난 1969년 「전국상업일군 열성자회의」를 통해 10일마다 열리는 농민시장을 1개 군에 한 군데씩 더 설치하라는 교시를 내렸다. 매일 열리는 장마당을 없애기 위한 궁여지책이었다.

 그러나 장마당은 없어지지 않았다. 공화국의 경제사정을 말해주듯 물자부족과 생활필수품 부족현상이 최고조에 이르렀는데도 국영상점과 협동단체 상업망은 한계를 보이며 인민들의 불평불만을 해소해 주지 못하고 있었다. 상점을 찾아가 허탕친 인민들은 없애려는 장마당으로 나가 자신들이 필요로 하는 물자와 중고상품을 구해 쓰며 『장마당이 당간부보다 낫다』는 말을 예사롭게 늘어놓았다. 인민반 소속 반원들이 국영상점이나 협동단체 상업망을 통해 생활필수품을 구매할 수 있게 물자와 상품을 늘려 달라고 입이 닳도록 부탁해서 정 아바이는 반장회의나 당세포 회의 때마다 인민들의 애원을 상급기관의 간부들에게 신소했었다. 그래도 당에서는 별다른 해결책이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장마당에만 나가면 어디서 그렇게 없다던 물자와 상품들이 쏟아져 나오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 만큼 장마당은 풍요로웠고, 갈 때마다 성시를 이루어 나갔다. 상품의 종류와 교환되는 거래량도 하루가 다르게 늘어났다.

 생활필수품과 물자부족현상으로 빚어진 인민들의 불평불만이 장마당에서 변통수를 찾으며 해소되고 있는 현상을 목격한 정무원은 정 아바이의 간곡한 신소에 답이라도 하듯이 며칠 전(1984년 5월) 지시문건을 한 통 내려 주었다. 『농민시장 외 1개 군 단위마다 1∼2개소씩 장마당(매일 열리는 상설시장)을 설치해 운영하라』는 내용이었다. 인민반 회의에서 정무원이 내려준 지시 사항을 인민들에게 전달하면서 정 아바이는 만감이 교차하는 것을 막을 길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