쫓는 자와 쫓기는 자(36)

 당중앙(김정일)이 수령의 공식승계자로 지목된 당대회였다. 그 후 당중앙은 노동당 비서국 비서 겸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영전되었다.

 박창근 연구원은 당중앙이 수령의 공식승계자로 지목되어 감투를 서너 개 이상 덮어쓰자 『지도자 동지는 우리 공화국의 장군별이시며 우리의 희망이시다』라고 외치며 지도자 동지와 그 일가가 먹는 북한산 채소와 과일의 맛 개발에 열성을 쏟았다.

 그 이듬해 림복순 부기원은 둘째 아이를 임신했다. 그때까지도 그녀는 박창근 연구원을 돕는 연구조수로 근무했다. 밤을 새워가며 연구하는 남편을 지성으로 내조하다 임신 3개월 된 뱃속의 태아를 유산하고 말았다.

 충성심에 불타는 과로가 원인이었다. 그녀는 그 과로 때문에 원하지도 않던 중절수술까지 받아야만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수술을 받은 뒤에도 하혈이 계속되었다. 그것이 빌미가 되어 그녀는 정규 신체검사에서 9호농장 근무부적격자로 판정을 받게 되었다. 그 판정 때문에 그녀는 남편 곁에서 떨어져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때부터 그녀는 남편의 시어른이 살고 있는 금천군 독정동배급소 부기원으로 근무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느닷없이 찾아온 군부대 보위원들이 사진 한 장을 내놓으며 이 사람과는 어떤 관계냐고 물으니까 어이가 없는 듯 약간 당황하는 빛을 보였다.

 그러나 그녀는 이내 세련된 자태로 웃음을 보이며 남편 이야기를 꺼냈다.

 『저는 모르는 분이지만 저희 세대주가 알고 있는 분인지도 모르니까 9호농장으로 가보시면 어떠시겠습니까?』

 『아, 아닙네다.』

 문중위는 심하게 고개를 저었다. 9호농장 연구원 부인을 잘못 건드렸다가 호위총국으로부터 질책을 받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그는 얼른 빠져 나올 뜻을 내비쳤다.

 『림복순 동무가 모르는 분이라면 저희는 기렇게 보고하면 그만입네다.』

 박중위는 림복순 부기원의 당당한 모습과 흐트러지지 않는 자태에 주눅이 들어 빨리 일어나자고 했다. 문중위도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소장과 림복순 부기원에게 보위사업에 협조해 주어서 고맙다고 인사하고 사무실을 나왔다.

 인근 례성강 쪽에서 훈훈한 봄바람이 불어왔다. 봄볕은 따가울 정도로 달아 있었다. 문중위와 박중위는 보위부 정보원을 분주소에 내려주고 바로 월암리로 들어갔다. 성복순 용의자를 만나보러 가는 길이었다.

 『문중위, 림복순 에미나이 기거 왜 기렇게 도도하네?』

 박중위가 큰방아재고개를 넘으며 물었다. 멀리 보이는 월암리 민가 주택들을 바라보며 문중위가 멋쩍게 웃었다.

 『썩어두 준치라구, 한때 지도자 동지의 신임을 받으며 9호농장 연구조수로 복무한 에미나이라 기렇갔지…. 배급소 소장도 절절 기더구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