쫓는 자와 쫓기는 자(48)

 웃음꽃이 피어오를 때는 협동식당에서 만났던 혜련 동무의 얼굴이 떠오르기도 했다. 박중위는 혜련 동무의 집 뒤란에서 가진 그녀와의 뜨겁던 순간들을 떠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깨갱거리는 암캐 모양 자신의 아랫도리를 감아 부치며 기묘한 신음소리까지 내던 혜련 동무의 모습이 눈앞에서 아른거리며 온 몸의 맥이 탁 풀려버리는 것이었다.

 알지 못할 일이었다. 성복순 용의자를 바라보고 있는데 왜 혜련 동무의 얼굴이 떠오르며 또다시 부화질이 하고 싶어지는가. 저 에미나이 웃음이 사람 죽이는 웃음이구나. 기런데 내가 범죄자 체포하러 나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가…? 박중위는 눈앞에서 아른거리는 혜련 동무의 얼굴을 지우듯 돌연 권총을 빼들었다.

 『빨리 가서 수갑채워. 나 배고파.』

 문중위가 고개를 끄덕이며 성큼성큼 앞으로 나갔다. 그 뒤를 안전원과 정 아바이가 뒤따랐다.

 『언니, 저기 좀 봐.』

 다가오는 문중위와 안전원을 바라보던 성복순 용의자가 강영실 동무를 흔들었다. 두부 함지에 물을 뿌리던 강영실 동무가 고개를 들었다.

 그녀에겐 앞서 다가오는 문중위와 안전원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뒤따라오는 인민반장만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반가운 빛을 보였다.

 『어서 오시라요. 반장 동지가 장마당에는 어인 일입네까?』

 강영실 동무는 자리에서 일어나 매대 앞으로 나왔다. 건너편 매대에 앉은 아낙이 동행한 안전원과 군인들을 보고 눈이 똥그래졌고, 장마당을 휘젓고 다니던 꽃재비(부랑아)들이 총을 든 박중위 곁으로 몰려들며 힐끔거렸다.

 문중위는 성복순 동무 곁으로 다가가 손목에다 날렵하게 수갑을 걸었다. 그리고는 달아나지 못하게 정강이를 몇 번 구둣발로 내려찍었다.

 『생생보(창녀) 같은 년! 전연(전방) 복무 군인들을 집안으로 끌어들여 가랑이를 벌려? 이 사관하고는 어드런 관계야?』

 문중위가 인구의 사진을 꺼내 들이밀었다. 몽둥이 맞은 암캐처럼 매대 곁에 쓰러져 바들바들 떨고 있던 성복순 용의자가 그때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듯 고개를 떨어뜨렸다. 강영실 동무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사색이 된 표정으로 문중위를 바라보았다.

 『동무도 동범(공범)이지?』

 문중위는 왁살스럽게 강영실 동무의 손목을 낚아채어 수갑을 채웠다. 인민반장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수갑을 채운 연유를 알려 주었다.

 『동무, 어쩌다 그런 과오를 저질렀소. 이 며칠 전 강동무 집에 온 전연지대 사관들이 가는 길에 화물차가 뒤집어져 죽었다지 않소. 여태 그 소식 못 들었는가?』

 강영실 동무는 그때서야 사관장의 신변에 무슨 변고가 있다는 것을 깨달으며 울음을 터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