쫓는 자와 쫓기는 자(34) 문중위는 정보원을 따라 배급소 경비초소 쪽으로 걸어가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철조망으로 울타리를 만들어 놓은 넓은 공터에는 덩그렇게 창고가 두 동 서 있었는데, 한쪽은 전쟁비축미 창고였고, 한쪽은 배급식량창고였다. 그 창고 문 옆에는 여러 대의 손수레와 지게가 서 있었고, 창고 문 앞에는 빈 식량자루를 접어서 끼고 있는 300여 명의 주민들이 3열 종대로 줄을 선 채로 창고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전쟁비축미 창고 옆에는 10여 명의 경비병들이 웃통을 벗고 모여 앉아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까 봄볕을 받으며 이(蝨)를 잡고 있었다.

 『왜 창고 문이 닫혀 있소?』

 보위부 정보원이 줄을 서 있는 사민들 곁으로 다가가 물었다.

 『배급일꾼들이 점심 먹고 오침(午寢) 중이라고 합네다….』

 정보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돌아왔다. 그는 문중위와 박중위를 데리고 창고 옆에 서 있는 가건물 쪽으로 걸어갔다. 배급소 소장과 관리원들이 생활하는 사무실이 거기 있었다. 정보원은 늘 드나들어서 안면이 있는 듯 오침(午寢)을 즐기고 있는 사무원들을 깨우며 두 사람을 소장실로 안내했다. 담화탁자 위에 장기판을 올려놓고 인근 농기계관리소 위원장과 장기를 두고 있던 소장이 먼저 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니, 지도원 동무가 웬 일입네까?』

 소장이 인사를 하자 보위부 정보원이 소장의 귀에다 대고 뭐라고 속삭였다 그러자 지배인의 안색이 달라졌다. 그는 갑자기 긴장하는 빛을 보이며 문중위와 박중위에게 자리를 권했다.

 『좀 앉기오. 오침시간이라 쉬고 있는 중입네다.』

 지배인은 인근 농기계관리소 위원장과 장기를 둔 것이 죄밑이라도 뒤는 듯 어색한 몸짓으로 장기판을 거두며 바깥에다 대고 아랫사람을 불렀다.

 잠시 후 여사무원이 물병과 컵을 들고 들어왔다. 소장은 문중위와 박중위에게 신덕샘물을 한 잔씩 대접한 뒤, 여사무원에게 림복순 부기원을 불러오라고 했다.

 여사무원이 나간 지 5분이나 되었을까? 노동복 상의에다 주름치마를 받혀 입은 림복순 부기원이 소장실로 들어왔다. 긴 머리카락을 뒤로 넘겨 머릿수건(스카프)으로 단정하게 동여 맨 그녀는 문중위와 박중위가 자신의 아래위를 훑어보고 있다는 것을 의식했는지 문 앞에서 약간 망설이는 자세로 서 있었다. 소장이 재빨리 그녀를 안으로 불러들여 문중위와 박중위에게 소개했다.

 『림복순 부기원입네다. 배천군 9호농장에서 부기원으로 일하다 지난해 우리 배급소로 조동(조직적인 이동, 전출)되었지요. 토대도 좋고 매사에 열성적인 동뭅네다….』

 9호농장이란 지도자(김정일) 동지와 그 일가에 진상하는 특산물을 재배하는 농장을 말한다.

 이 특산물은 통상 「1호식품」이라고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