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히트 쳤던 가요처럼 그 시절 중국은 ‘가까이 하기엔 먼 당신’ 같은 대상이었다. 역사 갈피마다 고운 정 미운 정 얽혀 서리다 급기야 한국전쟁 이후엔 “무찌르자 오랑캐”라며 이를 갈았던 것이 엊그제였으니 말이다. 그러나 흐르는 세월 앞에선 그토록 사무친 한(恨)도 자리를 털어야 했다. 더디나마 한중수교(1992) 이후 노무현 대통령의 방중성과까지 지켜보노라니 새삼 중국은 멀리하기엔 너무 가까운 이웃으로다가 선다.
 산동반도서 이 땅 닭 우는소리가 들렸다던 고사는 과장이라 치더라도 방금 인천이 한중 동반교류를 위한 더없이 가깝고 긴한 길목으로 부상하고 있음은 다 아는 사실이다. 세계경제의 새 질서를 창출하고자 지리적 우위와 중국 일본, 나아가 극동 러시아를 연계할 하늘과 바다의 허브기능으로서 교류확대에 나선 인천의 기상은 한 것 부풀어 있다.
 인천시는 그간 지방정부로서는 가장 먼저 텐진과 자매관계를 맺고 이어 칭다오·다렌·연타이·단동 등 대륙연안 7개 도시와 직항로를 개설하는 등 발빠른 움직임을 보여 왔다. 특히 현안 ‘인천경제자유구’ 프로젝트는 동북아시아 글로벌 중계창구에 이바지 할 무한한 전략가치를 지닌 만큼 성패는 곧 인천의 미래상과 직결할 중 차대한 과제인 것이다.
 이와 관련, 준비기획단을 지휘했던 박연수 단장이 밝힌 개발안은 미구에 동북아시아의 기수로 자부하기에 모자람 없는 마스터플랜이나 여기서 방대한 자료를 펴기엔 자리가 비좁다. 다만 유의 할 점은 아무리 기본계획이 짜임새 있어도 추진과정에 주체가 사람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아니 된다는 평범한 교훈이다. 손자병법에 이르기를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 백번 이긴다”(知彼知己 百戰百勝) 하였거늘 하물며 그들의 계명을 통해 우리는 평소 중국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 미심쩍어 하는 노파심이다.
 단지 거리적으로 이웃이고 같은 문화권에 속했다는 것만으로 안이하게 임했다가는 큰 코 다치기 십상인 것은 중국이 불원 미국과 대적할 거인인데도 우리는 그들을 얕보니 탈이다. 참고로 인터넷 한국인의식조사에서 “만약 다시 태어난다면 어느 나라 국민?”을 택하겠는가 물었더니 중국을 지목한 답은 최하위인 고작 0.7%에 불과 했다. 한편 중국인을 포함한 외국인은 한국을 일컬어 가장 살기 힘든
 나라로 꼽는 아이러니는 곧 상호의중의 불신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보기다. 무릇 크고 작음을 불문하고 거래(去來)는 인간관계의 믿음에서 출발해야 맥이 끊기지 않고 오래 지속되는 법이다. 더욱이 신의를 으뜸 덕목으로 여기는 중국인 앞에서 아무리 겉치장을 해도 속 다르면 그것으로서 흥정은 끝나기 마련이라는 지적이다. 이처럼 한중 두 나라가 가까운 이웃인데도 보이지 않는 벽을 실감케 하는 것은 바로 상호간의 커뮤니케이션 부재 현상이며 이는 비즈니스 기반 구축보다 선행돼야 할 숙제다.
 일반적으로 외국인은 한국인을 일컬어 자기주장과 의뢰심이 강할 뿐 아니라 유순한 듯 하면서 과격하고 겸손 뒤 속내는 거만하다는 평이다. 그러기에 정작 지방정부가 권하는 자유구역에 거주할 경우 한국인의 시기와 배타심을 어떻게 감내할 것인가 걱정이란다.
 그건 그렇다 치고 이처럼 중지를 모아도 모자랄 판국에 중추기능을 총괄지휘 하던 기회관리실장이 전격 경질됐다는 소식을 접하고 시민들은 충격과 함께 냉소를 금치 못하고 있다. 아무리 인사가 만사라지만 적재와 적시를 구분 못한 이번 조치는 낙하산인사 아니면 일부시샘의 결과라는 빈축이 설득력을 지니고 있어 당국은 변명하기 궁색할 것이다.
 이 순간 중국은 2008년 올림픽을 향해 온 힘을 다해 달려가건만 우리 주변선 딴죽 걸기가 여전하니 행여 중국 시각에 속 좁은 이방인으로 비치지 않나 싶어져 마음 편치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