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근 변호사
 법이 지향하는 이념은 정의와 형평이지만 현실의 법이 정의로운 것인가는 별개의 가치판단의 문제이다. 오랜 군사독재정권의 통치기간 중 법의 개혁이 불온시(?)되고 그 후에도 법개혁의 실무를 담당한 국회가 정쟁의 전쟁터가 되어 법개혁 작업이 종종 방치된 결과로 법의 운용에 참여하는 판사,검사,변호사들은 물론이고 일반인들에게 조차도 몇몇의 법들은 현실에 맞지 않는다던가 법이 시민들의 정의관념에 크게 배치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러한 법현실과 정의관념 사이의 괴리를 잘 보여준 것이 2000년 4.13 총선에서의 낙천낙선운동이었다. 결국, 법원은 이러한 시민들의 정의관념을 고려하여 낙선의 대상자를 선정하여 유권자에게 공개하는 것은 불법이 아니지만 각 지역선거구에서 구체적인 낙선운동을 전개한 것은 불법이라는 판결을 하게 되었다. 낙선운동 자체가 정의롭지 못한 것이니 처벌해야 마땅하다는 것이 아니라 악법도 법이니 처벌해야 한다는 논리가 우리의 마음을 씁쓸하게 하지 않았던가.
 철도노동자들의 파업을 불법파업이라며 형사처벌, 징계, 손해배상 등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법적수단을 동원해야 한다는 우리사회 일각의 주장은 경제불황의 바닥에서 벗어나 보려는 상황에서 파업이 경제위기를 불러 올 수 있다는 국민들의 불안감에 비추어 크게 탓할 수야 없겠지만 정의와 형평이라는 법의 이념에 비추어 올바른 법의식이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 헌법 제33조가 노동자의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국민의 기본권으로 규정하고 있듯이 노동자의 단체행동권으로서 파업은 금지되거나 제한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원칙적으로 허용되고 예외적으로 제한되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 일각에서 오랜 권위주의 통치기간을 거치면서 원칙과 예외가 바뀌어 인식되고 있는 사례 중에 하나가 노동자의 파업에 대한 법의식이 아닌가도 생각된다. 문제는 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 등의 노동관계법에서 원칙과 예외가 전도되어 원칙적으로 파업이 금지되는 필수공익사업장의 분야를 지나치게 광범위하게 규정하고 법을 운용하는 공안당국과 행정당국도 세계적으로 비교될 정도로 업무방해죄 등 일반형법조항을 지나치게 확대적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기류에 편승하여 필수공익사업장의 사용자들이 단체교섭을 해태하는 등 정당한 노동조합 활동에 대하여도 이를 무시하는 태도로 일관하여 파업을 촉발시키는 모습마저 보이고 있다.
 이렇게, 필수공익사업장제도가 남용되자 2001년 11월에 서울행정법원은 “필수공익사업장의 쟁의행위라 해도 그 경위와 경중의 사정을 살피지 않으면 안 되며 행정기관의 일방적 결정에 의한 직권중재제도는 헌법에 보장된 단체행동권을 제약하고 노사자치주의와 교섭자치주의에 위반되며 과잉금지 원칙에 어긋나 사실상 단체행동권을 박탈하는 등 기본권을 침해한다”며 위헌심판청구를 하기도 하였다.
 지난 2002년의 발전노조의 파업사건에서도 5개의 발전자회사들은 발전노조가 설립된 이후 노사간 교섭으로 시급히 제정되어야 할 단체협약의 제정에 있어서 노조에서 요구한 160여개의 단체협약 사항 중 불과 3개 항목정도에서만 합의가 이루어지다가 파업직전에야 대다수의 단체협약안을 받아 들이는 등 필수공익사업장제도를 남용하여 단체교섭을 해태하였다는 지적을 받기도 하였다. 파업관련한 손해배상제도가 남용되어 파업과정에서의 시설물의 파괴 등의 행위가 발생한 것도 아닌데, 단지 파업기간 동안의 매출액을 모두 손해라고 주장하며 천문학적인 숫자의 가압류가 행해지는 것도 형평의 원칙에 크게 어긋나는 것이다.
 법원의 판사들도 그 법의 내용이 현실의 노사관계에 비추어 헌법의 이념과 규정에 맞지 않고 남용되고 있다는 지적을 하고 있는 법을 현실과 법의 이념에 맞게 개혁하여 그 법에 의하여 처벌을 받게 되는 노동자측도 어느 정도의 승복할 수 있는 내용이 되도록 하는 작업이 진행되지는 않고 실정법에 위반되어 불법이니 형사처벌, 손해배상 등 가능한 법적수단을 모두 동원하여 노동조합 간부들을 징벌해야 한다는 것은 적어도 법의 이념인 정의에 부합하지 않고 불법을 남용한다는 비판을 받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