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푸른 밤 바다는 심해만큼 깊은 침묵의 세상이다. 뱃전에 와 닿는 물소리만이 밤의 적막을 깨고 처연히 속삭인다.
 배는 하염없이 밤의 수평선을 넘어간다. 저 멀리서 다가오는 희미한 빛 줄기 하나…. 그 곳으로 노를 저어, 저어 가자. 날이 희붐하게 밝아온다. 어느덧, 아침 햇살 머금는 검붉은 어부의 얼굴.
 ‘팔미도등대’가 이번 달로 꼭 100살을 먹었다. 1903년, 90촉광짜리 석유등으로 칠흑같은 밤바닷길을 밝혀준 ‘도깨비불’은 2003년 ‘위성항법 위치정보송출장치’로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뤘다.
 등대는 그러나 100년전과 똑같은 모습으로 물과 어둠만이 가득한 밤바다의 환한 이정표로 오롯이 서 있다. 2003년 6월의 팔미도등대를 찾아가 봤다.
 
 지난 26일 오전 8시50분. 인천지방해양수산청의 표지작업선인 ‘인천951호’ 배에 올랐다. 팔미도로 가는 일반 여객선은 없으므로 부득불 951호 작업시간에 맞춰 배를 얻어타야 했다.
 연안부두에서 팔미도까지는 바닷길로 13㎞. 최순종 선장은 팔미도까지 쉬지 않고 가면 40분정도 걸린다고 했지만 951호는 10, 8, 6, 4, 2호 ‘등부표’를 점검하고 갔으므로 팔미도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10시쯤 이었다.
 “뭐 볼 게 있다고 왔어요.” 선착장이라고도 할 수 없는 해변에 닿은 기자를 마중 나온 팔미도항로표지관리소 허근(59) 소장은 퉁명스럽게 응대한다. 허소장은 그러면서도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 보인다. 팔미도는 면적 2만3천평에 해안선 길이가 겨우 1.4㎞인 ‘아기섬’이다.
 허소장을 따라 해발 71m의 섬꼭대기에 이르니 하얗고 통통해 보이는 원통형 건축물이 말없이 서 있다. 팔미도등대의 상징 ‘등탑’이다. 이 등탑은 1903년 석유 백열등으로 초점등을 한 뒤 1954년 발동발전기를 가동하면서 전기등으로 바뀌었다. 이때부터 팔미도 등대에선 무신호기도 설치·운영하기 시작했다.
 이어, 1963년엔 무선표지국을 세웠고 1984년 등명기 회전장치를 개량했으며 1991년엔 태양광발전장치를 설치했다. 따라서 과거 ‘등대=등탑’이었지만 지금 ‘등대’라 하면 등탑과 함께 무신호기계 위성항법송출장치 등을 포함한 포괄적 개념으로 봐야 한다.
 허소장 말로는 등탑의 높이가 7.9m라고 했지만 눈대중으로는 5m정도 밖에 돼 보이지 않았다. 등탑은 지금도 일몰부터 일출까지 40초 동안 360도 회전을 하며 세 차례 섬광을 발사한다. 안개가 끼거나 폭풍우 등이 일면 취명, 정명 등 무신호가 울려 퍼진다. 날씨가 고르지 않으면 불빛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한참 얘기를 나누던 허소장이 사무실 건물로 들어간다. “둘, 열 넷, 제로….” 전화를 든 그가 어디론가 숫자를 암호처럼 불러준다. 팔미도 인근 바다의 기상정보를 알려주는 것이다. 풍향, 풍속, 전운량, 기온, 오늘 강수량, 어제 강수량, 현재일기, 기압 등 허소장은 하루 다섯 차례에 걸쳐 기상·해양관측정보를 전달한다. “지금은 기상대 위탁업무가 주가 돼 버렸어요.” 허소장은 뱃길을 잡아주던 등대의 역할이 점차 기상관측소 성격으로 변하고 있다고 말한다. 등탑 뒤로 보이는 철골건축물은 이런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
 인천지방해양수산청은 현재 현대적 조형미와 첨단 항로표지 기술을 갖춘 대형등대를 건축 중이다. 전망대와 등탑을 갖춘 높이 31m, 지하1층, 지상4층의 현대식 건물은 올해 완공된다. 새 등대는 위성항법 위치정보송출장치 등 최첨단 시설을 갖추고, 기상관측과 연안정지 해양관측의 업무를 꾸려갈 예정이다.
 팔미도 앞바다에서 발발한 러·일전쟁, 한국전쟁 당시 팔미도등대 탈환작전 등 격동의 현대사를 말 없이 지켜 본 팔미도 등탑. 그 작고 하얀 등탑은 이제 불꽃처럼 타오른 한 세기를 접고, 문화재의 모습으로 새롭게 태어날 것으로 보인다. <글·사진=김진국기자> freebird@incheo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