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를 찍을 사람은 강 감독 밖에 없다”는 주위의 권유에 흔쾌히 투자와 제작을 허락지만 실제 강우석 감독의 머릿속엔 요즘 후회와 두려움, 그리고 제작비에 대한 부담감뿐이다.
그만큼 10여 년 간 수많은 감독의 입이 오르내리며 시나리오로만 나돌았던 영화 ‘실미도’의 실체 속엔 보이지 않는 벽들이 있었던 것.
그러나 최소 90억원이라는 제작비를 직접 투자하며 서슴없이 “마음을 비웠다”는 표현을 사용할 만큼 영화 ‘실미도’에 대한 강 감독의 의지는 특별하다.
고무보트를 타고 평양으로 향하던 부대원들을 바다에서 뒤쫓아가 조 중사(허준호)가 끌고 오는 2분30초의 장면의 촬영을 위해 9억원의 제작비를 들여 몰타 공화국 해외촬영을 강행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
1968년 1월21일. 북한 특수부대원 31명이 청와대를 급습하기 위해 남한에 내려오고 생포된 김신조는 TV에서 침투 목적을 묻는 질문에 “박정희 목 따러 왔수다”라며 국민의 간담을 서늘케 한다. 얼마후 연좌제에 걸려 폐인 같은 생활 끝에 사형수가 된 인찬(설경구)은 자신을 찾아온 일명 684부대로 불리는 실미도 북파공작대 교육대장인 재현(안성기)의 제안으로 실형을 면하고 실미도 특수부대로 호송된다.
함께 모인 2조장 상필(정재영), 2조원 원희(임원희), 3조원 찬석(강성진) 등 31명의 부대원들도 사회 쓰레기로 취급된 사형수와 무기수, 그리고 사회 부적응자들.
임무완수 이후 보장받을 새로운 삶을 담보로 대원들은 지옥의 특수훈련을 3년씩이나 받고 인간병기로 거듭난다.
그러나 70년초 급격한 남북 화해무드 분위기를 타고 정부는 급기야 실미도 부대원들의 전원 사형과 함께 부대해체를 결정한다. 대원들은 야음을 틈타 교육기간병들을 살해하고 민간 배를 탈취해 섬을 탈출하는데….
(주)시네마서비스와 (주)한맥영화사가 공동제작하는 이 영화는 이런 줄거리와 제작 외적인 화젯거리보다는 인천의 숨은 역사를 주제로 인천에서 촬영되는 최초의 블록버스터라는 점에서 일찌감치 인천시민들의 관심을 끌어왔다.
지난해 미국 메이저영화사 콜롬비아사의 전액 투자 계획을 알렸다가 시네마서비스의 전액 투자로 바뀌거나 영화 빨리 찍기로 소문난 강 감독이 얼마나 큰 흥행을 기록할까 보다는 많은 영화팬들이 지금 실미도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에 관심이 모아지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원구기자> jjlwk@incheo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