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폐교된 푸른고등공민학교 모습(평촌 앞장술).

'평평할 평(坪)', '마을 촌(村)'으로 구성된 평촌 마을은 글자 그대로 평평한 대지 위에 형성된 반농반어의 마을이다. 봉우리가 길게 이어진 장봉도에서 가장 높고 중심 역할을 하는 국사봉(150.3m)을 기점으로 남서쪽에 위치하며, 행정구역상 옹진군 북도면 장봉2리이다. 장봉도의 장봉 1~4리 중 행정과 교육의 중심지로 가장 많은 주민이 거주하고 있으며, 주민등록상 263세대, 447명이 거주하고 있다. 장봉 출장소와 장봉초등학교(현 인천삼목초등학교 장봉분교), 중등교육기관으로 1967년에 개교하여 1983년 2월28일 폐교된 '푸른학원' 이외에 장봉 보건지소, 소방대 등이 있다.

 

▶평촌의 지형

이 마을은 사람이 살기에 천혜의 조건을 간직한 곳으로 촌락을 중심으로 산지가 3면으로 둘러싼 아늑한 지형이며, 유일하게 남쪽으로 바다가 열려있는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만(灣) 지형이다. 마을의 동쪽은 국사봉에서 뻗은 안산(案山)과 다르구지산이 남으로 내려오면서 해안에서 멈췄다. 서쪽은 번등 고개, 터러먹 고개를 만드는 산줄기와 이어서 바르미산, 야달 선착장까지 뻗어 나간다. 마을의 남쪽은 다르구지산과 서쪽의 동족골 뿌리가 마주 보며, 평촌 앞장술로 연결되어 있다.

평촌 일대의 지형은 국사봉 줄기 남록 완사면 말단부에 밭 경작지가 있으며, 이어서 더 낮은 지형에 논이 위치한다. 현재의 논은 원래부터 경작지였을까? 보통 해안지형에 조성된 평지의 논과 밭은 대체로 간척에 의한 것이 대부분으로 평촌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며, 간척 이전에는 바다였을 것이다. 특히 지역 주민인 차윤태씨(장봉 3리)의 증언에 의하면 절터골 앞의 논에서는 과거 토탄이 많이 출토되었다고 하는데, 이 토탄은 파도에 의해 해안가 혹은 산지에서 흘러내린 나뭇가지 등 유기물이 쌓여 탄화된 것으로 옛 지형이 바다였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다만 평촌 일대의 논이 언제 간척됐는지는 알 수 없다. 인근 강화도의 경우 고려시대인 13세기부터 몽골 침입과 관련하여 간척사업이 시작됐다는 점을 고려해 본다면 장봉도의 간척도 고려시대 장봉궁이 설치된 13세기 혹은 조선시대 장봉 수군진이 설치 운영된 시기인 18~19세기부터 간척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평촌은 배산임수 지형으로 3면의 산지가 병풍처럼 둘러싸며, 산지 안으로는 원래 바다였으나 간척으로 넓은 평평한 경작지가 조성된 지형이다. 그리고 간척지 위에 집을 짓고 촌락이 형성된 것이다.

 

▶촌락의 형성

평촌에서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촌락의 형성이다. 흔히 배산임수의 만(灣) 지형의 경우 산록완사면에 촌락이 해안가를 따라 열을 지어 형성되며, 촌락 앞으로 경작지, 해안가로 이어지는 모습이 일반적이다. 평촌의 경우는 어떨까? 이곳은 산록완사면에 이어 경작지, 촌락, 해안가로 이어져 전형적인 해안 취락의 형성 입지와 다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장봉도 일대는 100여 년 전부터 새우잡이 해선망 어업이 발달했으며, 특히 만도리 어장은 어족자원이 풍부한 우리나라 3대 어장으로 유명했던 곳이다. 해선망 어업을 통해 평촌 지역 일대는 새우 어획물을 통해 많은 부를 축적한 선주(船主)들이 증가했고, 그들이 바닷가 조업의 편리성을 위해 해안가 중심으로 집을 지었던 것이다(홍순일씨 증언). 이후 점차 증가하여 현재와 같은 해안가를 중심으로 집촌을 형성하게 된 것이다.

▲ 김석훈 백령중고 교감·인천섬유산연구소 이사.
▲ 김석훈 인천섬유산연구소 이사·문학박사

/김석훈 인천섬유산연구소 이사·문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