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수원대학교 유럽학부 교수
나애리
▲ 프랑스 파리 소르본대학
▲ 프랑스 파리 소르본대학

중세로 문화 기행을 떠나봅니다. 중세(the Middle Ages)는 '중간에 끼어있는 시대'로, 서로마 멸망(476년)부터 동로마 멸망(1453년)까지를 가리킵니다. 단어만으로 보면 '있어도 없어도 그만'인 시대라고 할 수 있지요. 사실 중세는 종종 '암흑시대'로 일컬어질 만큼 부정적 가치를 지닙니다. 왜 그럴까요? 중세 이전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는 헬레니즘을 포함한 고전 문화가 찬란하게 꽃피웠던 시대이며, 중세 이후는 고대 인문주의의 부활을 꿈꿨던 '르네상스 시대'입니다. 둘 다 헬레니즘을 기반으로 한 인간 중심의 시대였던 반면, 중세는 신 중심의 시대입니다. 일부 서양 역사가들의 눈에 비친 중세 천 년은 인간성이 상실된 '암흑시대'였습니다. 전쟁이 끊이지 않았고, 흑사병과 맥각병 등 전염병이 창궐했지요. 철저한 신 중심 사회는 강압적 신분제도와 맹목적 신앙을 강요했습니다. 하지만 중세가 정말 어떤 '빛'도 없는 '암흑'의 시대였을까요?

중세 초기에는 인간의 삶의 환경이 열악했지만, 10세기경부터 서서히 도시가 발달하기 시작합니다. 우선, 대학들이 생겨났습니다. 중세 최초의 대학이라 할 수 있는 볼로냐 대학(1088년)을 필두로, 파리 소르본 대학, 옥스퍼드 대학, 케임브리지 대학 등이 생기면서, 신학, 법학, 의학 교육이 이뤄졌습니다. 또 철학을 기반으로 한 신학이 체계적으로 발전했는데, 특히 신앙과 이성의 조화를 추구하는 스콜라 철학이 크게 유행했습니다. 사실 대학이 있기 전부터 이미 수도원들이 중세 학문 발전을 이끌었고, 수많은 필사본을 남기는 데 있어 큰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므로 중세는 암흑 속에서도 학문의 빛을 밝힌 시대이며, 이는 중세가 근현대에 남긴 가장 위대한 유산 중 하나입니다.

▲ ‘하늘과 바다 사이에 매달린 정원’으로 불리는 몽 생 미셸 수도원(Mont Saint-Michel)<br>
▲ ‘하늘과 바다 사이에 매달린 정원’으로 불리는 몽 생 미셸 수도원(Mont Saint-Michel)

중세 암흑론에 대한 또 하나의 반론은 바로 예술의 발전입니다. 중세는 신을 위한 시대였던 만큼 종교 예술의 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 신에 대한 믿음은 로마네스크에서 고딕으로 이어지는 불가사의한 성당을 지을 수 있게 했습니다. '하늘과 바다 사이에 매달린 정원'으로 불리는 몽 생 미셸 수도원(Mont Saint-Michel)은 섬에 지어진 기적 같은 건축물입니다. 주교가 신의 계시를 받은 후 썰물이 되면 육지와 분리되는 이 신비로운 섬에 수도원을 세우게 된 것이지요. 요새와 같은 섬 꼭대기 중세의 비밀이 담긴 수도원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을 유혹하는 명소입니다.

성당의 건축 양식도 획기적으로 변했습니다. 10~12세기에는 주로 육중한 돌벽을 기반으로 한 안정적 수평 구조의 로마네스크 성당이 건축되었습니다. 하지만 기술의 발전과 건축 공법의 진화는 새로운 양식의 성당 건축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고딕 성당은 하늘 높은 곳을 향하는 수직구조의 건축물입니다. 로마네스크 성당에서 볼 수 있는 둥근 아치 대신 끝이 뾰족한 아치(Pointed-Arch)를 사용하고, 벽체는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했습니다. 성당이 쓰러지지 않게 외부 벽체 양옆으로 날개(공중 부벽)도 달아주었습니다. 결과적으로 고딕 성당은 가볍고 날렵하며, 마치 승천하는 것 같은 인상을 줍니다. 성당 내부로 들어가는 순간 스테인드글라스를 관통하는 빛이 거룩하고 몽환적인 감동을 자아냅니다.

▲ 노트르담 성당
▲ 노트르담 성당

고딕 양식을 대표하는 건축물은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입니다. 빅토르 위고의 소설 <파리의 노트르담>의 곱사등이 콰지모도가 울리던 종소리가 들릴 듯한 이 아름다운 성당은 온몸을 조각으로 두르고 있습니다. 출입구에, '참수당한 주교가 자기 목을 들고 몇 킬로미터를 걸어갔다'는 이야기를 묘사한 조각이 눈을 끕니다.

▲ 노트르담 성당 목잘린 신부 조형물
▲ 노트르담 성당 목잘린 신부 조형물

성당을 '돌로 된 성서'라고 말하듯이 그리스도교 신의 메시지가 여기저기에 숨어 있습니다. 성당 출입구 위 세 개의 반원형 팀파눔(tympanum) 중 가운데 팀파눔에는 '최후의 심판'이 적나라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죽은 영혼들이 심판을 받으러 저울대로 향하고, 악마들의 고문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성당 입구에서부터 그리스도의 구원을 절감하게 하는 조각입니다. 성당 지붕에는 '가고일(이무깃돌)'이라는 괴수 석상들이 보입니다.

▲ 노트르담 성당 괴수 석상
▲ 노트르담 성당 괴수 석상

본래 처마에 고인 물을 내려보내는 조각상들인데, 턱을 괴고 생각에 잠긴 채 파리 시내를 내려다보는 모습이 눈길을 끕니다. 2019년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 이후 프랑스 사람들은 큰 슬픔에 잠겼지만, 곧 그들의 눈앞에 노트르담 대성당의 환생이 다시 솟아오르길 바랍니다.

▲ 나애리 전 수원대학교 유럽학부 교수
▲ 나애리 전 수원대학교 유럽학부 교수

/나애리 전 수원대학교 유럽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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