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성원 전 인천대 정책대학원 겸임교수
▲ 고성원 전 인천대 정책대학원 겸임교수

고대 그리스에서 참정권은 하나의 특권이었다. 폴리스의 시민들은 누구나 말할 수 있는 자유를 누렸지만, 그렇다고 해서 누구나 다 아고라에 설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누구나 다 말할 수 있는 자유가 아무나 다 말할 수 있는 자유가 아니었던 이유는, 아무리 '공동체 국가'라고는 해도 아무 것이나 다 말해질 수 있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의 아크로폴리스는 그렇게 만들어졌고, 민주주의는 그렇게 성장해 갔다.

특별하다 할 것도 없는 '말할 수 있는 자유'가 하지만 이후에도 누구에게나 보장되었던 것은 아니다. 종교적인 이유로, 혹은 계급과 신분에 얽매여, 이념과 성별, 사회적 지위 따위에 기인하여 '말할 수 있는 자유'는 때로는 아주 폭력적인 방법으로, 또 비인간적인 방법으로, 제한되고, 억압되고, 사람들의 입은 틀어막혀지기도 했다.

그리고 그랬던 까닭에, '말할 수 있는 자유', '말할 수 있는 권리'가 이후 민주화와 인권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테마의 하나로 자리 잡았음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억압'과 '저항'이라는 측면에서, 일례로 민주주의 역사에서 가장 인상적인 순간의 하나로 꼽히는 1968년만 하더라도, 억압을 거부하고 자유를 갈구하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로 팽팽히 갈라서 있던 서구와 동구를 가릴 것 없이, 파리와 프라하에서 동시에 터져 나왔던 그 장면 하나만으로도, 사람들의 말할 수 있는 자유, 말할 수 있는 권리는 이념으로도, 혹은 종교나 무력 그 어느 것으로도 틀어막을 수 없는 숭고한 권리라는 엄연한 사실은 새삼스레 다시금 되돌아보기에 충분하다.

우리에게는 1987년이 그러했다. 1968년 파리의 5월 만큼이나, 1968년 프라하의 봄 만큼이나, 1987년 한국의 6월은 저항의 열기로 후끈 달아올랐고, 사람들은 '말할 수 있는 자유'를 지켜내고, '말할 수 있는 권리'를 얻어내기 위해 기꺼이 거리로 나설 용기로 충만했다.

지금은 비록 그 시절을 망각했더라도, 지금 우리에게 '말할 수 있는 자유'는 이제는 특권이 아니다. 목숨을 걸고 쟁취하거나 지켜내야 할 숭고한 권리도 아니다. 언제라도 먹고 마실 수 있는 물과 공기처럼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는 말할 수 있는 자유와 권리를 그렇게 우리에게 선사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우리는 그로 인해 민주주의가 무너질 수 있는 역설적인 현실을 여실히 목도하고 있다. 누구나 말할 수 있지만 '민주적 토론'은 제약되고 있다. 아무것이나 말할 수 있지만 '사회적 공론'은 요원해지고 있다. 사람들은 자유롭게 말하고 활발하게 토론하는 듯이 보이지만 그저 '목소리 큰 놈이 이길 가능성'은 더 커졌다. 가치에 대한 판단은 무색해지고, 경계의 장벽은 더욱더 높게 둘러쳐졌다. 시민사회는 양분되고 정당들은 양극화를 더욱더 부채질하고 있다. 양 진영에 갈라선 사람들은 그저 떠들어대기만 할 뿐 다른 사람의 목소리는 좀처럼 들으려조차 하지 않는다.

토론이 무산된 공간에 다양성은 존재할 여지가 없고, 깃발과 완장 만이 판을 치는 곳에 전체주의와 패권주의만이 난무할 뿐이다. 총선이 코앞에 다가왔지만 공론장은 여전히 무색할 뿐이다. 결전의 순간을 앞두고 주요 정당의 공천은 마무리됐지만, 아무리 봐도 여론이 그리 후한 점수를 줄 만한 형편은 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공론은 사라지고 무리 짓기 만이 난무할 뿐이다.

누구나 말할 수 있다는 점에서 민주주의는 확장되었지만 민주주의는 그 이상 심화하지 않았다. 실로 2000년 만에 아고라는 그렇게 부활했지만 단언컨대 민주주의는 그 이상 심화하지 않았다. 투표해야 할 시점은 다가오고 있지만, 내 투표는 어디를 향해야 할는지 망설여지는 순간이다. 다시 민주주의를 생각한다.

/고성원 전 인천대 정책대학원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