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전국시대를 살았던 관중과 포숙아의 우정은 포용과 아량의 상징이었다. 관중이 포숙아와 장사를 했을 때 가난하여 포숙아를 속이며 이득을 더 취했지만, 포숙아는 모르는 척했다. 관중이 포숙아를 위해 일을 꾀했다가 오히려 망쳤지만, 포숙아는 어리석다 원망하지 않았다. 시기에 유리함과 불리함이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관중이 벼슬에 나가 임금에게 세 번이나 쫓겨났지만, 포숙아는 때를 만나지 못함이라며 탓하지 않았다. 관중이 세 번 싸울 때마다 도망갔지만 포숙아는 겁쟁이라 비웃지 않았다. 관중에겐 부양해야 할 노모가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훗날 벼슬길에 올랐을 때 관중은 공자 규(糾)를, 포숙아는 규의 아우 소백(小白)을 섬겼다. 규와 소백이 왕위를 두고 대립해 포숙아가 추종한 소백이 제나라 환공에 즉위했다. 포숙아는 출세하고 관중은 감옥에 갇혔다. 관중의 현명함과 인간성을 믿은 포숙아는 관중을 요직에 천거해 국정을 맡게 했다. 관중의 계책 덕분에 환공은 제나라 제후를 규합하여 천하를 바로 잡을 수 있었다. 관중은 포숙아를 가리켜 “나를 낳아준 분은 부모이지만, 나를 알아준 진정한 친구는 포숙아다”라고 했다.

요즘 총선을 앞두고 기호 3번을 차지하기 위해 헤쳤다 모여 짓거리를 하는 정치인들이 있다. 과연 저들이 국민을 위해 관중과 포숙아의 동업 정신인 포용과 아량을 보일 수 있을까. 물과 기름의 본질을 잊고 “우리는 하나!”라고 외치는 모습에서 임시방편 오월동주(吳越同舟)가 떠오른다.

오나라와 월나라는 춘추시대에 와신상담(臥薪嘗膽)이란 말이 생길 정도의 원수지간이었다. 오나라 왕 합려는 월나라 구천과의 전쟁에서 패해 죽으며 아들 부차에게 원수를 갚으라는 유언을 남긴다. 부차는 유언을 잊지 않기 위해 섶나무 위에서 자며 지나다니는 신하들에게 “부차야! 너는 구천이 네 아버지를 죽인 사실을 잊었는가?”라고 외치게 해 복수심을 키웠다.

이를 알고 월나라 구천이 산제공격했으나 패하여 회계산에서 포위당했다. 하지만 많은 뇌물을 주며 부차의 신하가 되겠다고 한 후 월나라로 돌아왔다. 구천은 쓰디쓴 쓸개를 옆에 두고 맛보며 “너는 회계산에서의 치욕을 잊었는가?” 자책하며 복수의 칼날을 갈았다. 20년 후 구천은 오나라를 점령하고 부차를 굴복시켰다.

오나라와 월나라 군인들이 전쟁 중 바다에서 거센 폭풍우를 만났을 때 그들은 적이라는 사실을 잊고 한 배에 올라타 위기를 모면한 후 다시 적으로 갈라섰다. 우리 후보들도 총선 후 목적을 달성하면 위성정당처럼 자신의 본적지로 금의환향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김사연 전 인천시약사회장·수필가.
▲ 김사연 수필가·전 인천문인협회장

/김사연 수필가·전 인천문인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