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물밀물

국내에서는 다소 생소한 일본 오사카 히타치조센(日立造船株式会社)은 20세기 초 일본에서는 유명한 조선소였다. 1908년 일본 최초의 유조선인 도라마루(虎丸)호를 건조한 곳도 히타치조센이었다. 그 후 일본은 조선 기술을 더욱 발전시켜 20세기 후반에는 세계시장을 주도하였다. 그러나 히타치조센은 조선 부문이 분리돼 주력 부문에서 빠졌으며, 지금은 쓰레기 소각 발전 시설에서 세계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히타치조센의 저력은 여전해 보인다.

일본 군수산업 역사는 일본 군국주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미쓰비시 등 일본 대기업 역사는 그 현주소다. 히타치조센도 예외가 아니다. 특히 1937년 중일전쟁을 계기로 일제는 침략전쟁을 본격화하면서 조선인을 대거 전쟁터와 군수업체로 강제동원했다. 1938년 4월 제1차 고노에 내각이 공포한 '국가총동원법'이 그것이다. 이에 따라 일본 전역에, 특히 후쿠오카와 나가사키, 히로시마, 오사카, 오키나와 등에는 강제동원된 조선인들의 피눈물이 가는 곳곳마다 배어있다. 일제패망 때까지 무려 조선인 780만 명이 강제동원됐다. 불과 80여 년 전의 일이며 아직도 살아있는 현대사이다.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소송이 계속되고 있는 배경이다.

불가능할 것 같았던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의 길이 열렸다. 히타치조센에 강제동원됐던 한 피해자가 2014년 제기한 배상금 청구 소송에 대해 서울중앙지법이 20일 공탁금 출급 신청을 인용했다. 이에 따라 피해자는 히타치조센이 2019년 서울고법에 맡긴 보증공탁금 6000만원을 받을 수 있었다. 일본 전범기업의 돈이 강제동원 피해자에게 돌아간 첫 사례다. 소송 제기 후 약 10년 만의 일이다. 그 사이 피해자는 이미 고인이 됐지만 유족들의 노력으로 의미 있는 결실을 본 것이다.

이번 배상은 히타치조센이 자발적으로 낸 공탁금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무엇보다 전범기업의 돈으로 배상금이 지급됐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일본은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금 얘기가 나올 때마다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을 이유로 소멸시효가 완성됐다는 주장을 펼쳐왔다. 하지만 대법원이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까지 소멸한 것은 아니라고 판결해도 일본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이런 점에서 이번 히타치조센의 배상금 지급이 현재 진행되고 있는 다수의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소송에도 좋은 사례가 되길 바란다. 이제야 손해배상의 길이 열렸고 배상금도 지급됐다. 정부가 애써 길을 막거나 '우회 지원' 운운하며 본질을 흐려서는 안 된다.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일본 전범기업들과 치열하게 싸우는 것은 단지 돈 때문만은 아니다. 일제의 만행 앞에 그들이 흘린 피와 땀과 눈물을 결코 잊지 말아 달라는 간곡한 호소를 후세에 전하고 싶은 것이다.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 박상병 시사평론가
▲ 박상병 시사평론가

/박상병 시사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