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어진 캠퍼스만큼 높아진 위상

1972년부터 종합대학 시대 개막
이후 단과대학·학과 잇따라 증설
1981년 총 재학생 수 1만명 넘어

1978년 '인하건설5개년계획' 수립
시급한 교사·학과 시설 증설 해결

조중훈 재단 이사장 전액 출자 기반
2003년 첨단 정석학술정보관 준공

의과대학, 1985년 의예과로 첫걸음
1996년 인천 신흥동 병원 신축 개관
암 치료 전문 병원으로 세계적 명성
▲ 1968년 9월 제12대 조중훈 인하학원 이사장과 제6대 성좌경 인하공대 학장(인하대 초대 총장)의 취임식이 대학 노천극장에서 열렸다. /사진제공=인하대학교
▲ 1968년 9월 제12대 조중훈 인하학원 이사장과 제6대 성좌경 인하공대 학장(인하대 초대 총장)의 취임식이 대학 노천극장에서 열렸다. /사진제공=인하대학교

1978년 9월25일 조중훈(趙重勳) 인하학원 이사장의 취임 10주년 기념식이 열렸다. 조중훈은 1968년 인하학원 인수 당시 상황에 대해 “(인하학원은) 여러 어려운 여건 속에서 정돈이 안 되어 혼돈 그 자체였다”고 회고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충실한 장기계획을 세워 학교의 특성화를 추진해 나가겠다”고 공언했다.

1972년 종합대학으로 확장된 인하대학교는 1981년 문교부의 승인을 거쳐 야간대학이 폐지되고 단과대학이 증설되면서 본격적인 종합대학의 위상을 갖추게 됐다.

1954년 인하공과대학으로 출발했던 인하대는 1981년 공과대학, 이과대학, 경상대학, 사범대학, 법정대학, 문과대학, 가정대학 등 7개의 단과대학으로 성장했다. 1977년 이후부터 본격화되었던 학과 증설에 따라 신입생 모집 정원이 두 배 이상 증가했다. 1976년 총 재학생 수는 4610명이었지만 1980년대 초반은 1만명을 넘어서는 변곡점이었다.

학생 수의 증가는 필연적으로 학교 시설의 확충이 뒤따르는 문제이다. 그중에서도 재학생을 충분히 수용하고 밀도 있고 수준 높은 강의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교사(校舍) 증설이 시급했다. 이에 따라 1976년 '인하건설장기계획' 그리고 1978년 6월 이를 더욱 확대한 '인하건설5개년계획'이 수립됐다. 조중훈 이사장의 적극적인 지원에 따른 인하건설5개년계획은 1978년부터 1982년까지 4년 동안 각종 시설과 교사 건축, 내부시설 정비 및 증설에 총 87억여원을 투입해 신입생과 재학생의 증가에 부응하면서 명실상부한 종합대학의 면모를 갖추기 위한 계획이었다. 세부적으로 교사 건립 24억7200만원, 부속 시설 건축 13억2000만원, 각종 복지 시설 및 환경 미화 9억8900만원, 내부 시설 및 실습 기자재 구입과 소장 도서 확충 39억4000만원 등이다.

▲ 조중훈(오른쪽) 인하학원 이사장과 성좌경 학장이 취임식에서 대학 발전을 다짐하며 악수하고 있다.  /사진제공=인하대학교
▲ 조중훈(오른쪽) 인하학원 이사장과 성좌경 학장이 취임식에서 대학 발전을 다짐하며 악수하고 있다. /사진제공=인하대학교

시설 확충계획의 출발은 1976년 9월22일 제5호관(인문사회관) 착공식이다. 총 14개월이 걸린 5호관 건축은 1977년 11월23일 지하 1층, 지상 5층의 총면적 2353평 규모로 준공됐다. 이때 조중훈 이사장은 “인하인은 인하역사를 창도하는 주인공으로서의 긍지를 지님은 물론 인하의 발전이 곧 국가발전임을 명심, 자기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줄 것”을 당부했다.

5호관 준공과 함께 대운동장과 외야를 잔디로 덮은 야구장 건립도 완공됐다. 당시 인하대 야구장은 전국 최고의 시설로 평가됐다. 1979년 9월 5호관과 연결된 연면적 4062평의 8호관에 이어 제6호관(제2공학관, 4013평), 학군단(476평)도 들어섰다. 1980년 4월에는 제9호관과 도서관이 동시에 착공되어 1981년 6월 완공됐다.

특히 독립시설로서 중앙도서관(7000평) 건설은 종합대학으로서의 면모를 한층 높이는 계기가 됐다. 그동안 도서관은 본관 건물에 부속되어 정상적인 대학 도서관으로서의 기능을 발휘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신축 중앙도서관은 2362석의 열람석과 인문계 과제도서실, 자연계 과제도서실, 참고 열람실, 정기 간행물실 등을 설치하고 도서 이동용 승강기와 휴게시설 등을 갖추게 됐다.

인하대 중앙도서관은 여러 차례 큰 변화가 있었다. 우선 1984년 9월부터 국내 대학 도서관 최초로 도서관 전산화를 추진했다. 1987년 9월에는 서고의 모든 도서에 바코드(bar code)를 부착하여 대출 업무를 전산화했다. 1988년 9월부터는 디엔에스(DNS, Dacom Net Servise)를 실시하여 국내외의 각종 도서 관련 데이터 서비스를 온라인으로 신속하게 검색할 수 있는 전산시스템을 구축했다.

▲ 2003년 9월 조중훈 인하학원 이사장의 전액 출자(총공사비 670억원)로 세워진 정석학술정보관이 개관했다.  /사진제공=인하대학교
▲ 2003년 9월 조중훈 인하학원 이사장의 전액 출자(총공사비 670억원)로 세워진 정석학술정보관이 개관했다. /사진제공=인하대학교

인하대 중앙도서관은 2002년 조중훈 인하학원 이사장의 타계로 큰 전환기를 맞이하게 된다. 첨단 정석학술정보관(Jungseok Memorial Library)의 개관이었다. 2000년 첫 삽을 뜨고 2003년 완공된 정석학술정보관은 조중훈 이사장의 전액 출자로 세워졌다.

정석(靜石)은 조중훈의 아호이다. 조중훈은 회고록 <내가 걸어 온 길>에서 '나는 한번 마음 먹으면 끝까지 해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인데다 기계를 좋아하여 어려서도 신기한 것을 보면 만지고 뜯으며 이치를 알아내려고 노력했다. 선친께서 나의 이런 성격을 염려하셨던지 동(動)과 정(靜)이 조화를 이루라는 뜻에서 정석(靜石)이라는 아호를 지어주시기까지 하였다'라고 술회했다. 스스로도 분주한 성격이라 자평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정중동(靜中動)의 자세를 가지라는 뜻이라고 생각된다.

정석학술도서관은 개관 당시 여러 언론 보도에서도 볼 수 있듯이 동양 최대의 대학 도서관으로 평가됐다. 총공사비 670억이 투입되었고, 연면적 7483평 규모로 전통적인 대학 도서관의 이미지를 탈피해 최첨단 정보화 기기를 구비한 선구적인 면모를 갖췄다. 2004년에는 한국도서관협회 한국도서관상을 수상하는 등 많은 관심을 받았다.

▲ 인하대병원은 1996년 5월 750병상 규모로 인천 첫 대학병원으로 개원했다.  /사진제공=인하대학교
▲ 인하대병원은 1996년 5월 750병상 규모로 인천 첫 대학병원으로 개원했다. /사진제공=인하대학교

인하대학교가 국내 굴지의 종합대학으로 성장하는 데는 정석학술정보관과 함께 부속 병원의 개원을 빼놓을 수 없다. 1985년 의예과로 출범해 1986년 의학과가 설치되고 경기도 성남에 있던 인하병원을 부속 병원으로 두게 되면서 규모가 크게 확장됐다. 무엇보다 1996년 5월 인천 신흥동에 신축 개관된 인하대 부속 병원은 2023년 9월 미국 뉴스위크지가 세계 최고 암 치료 전문 병원으로 선정하는 등 인천지역은 물론이고 국내외적으로 그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조중훈 전 이사장은 말년 인하대 부속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고, 이 병원에서 폐질환으로 별세했다.

올해 인하대학교는 건립 70주년을 맞이한다. 현재 공과대학, 자연과학대학, 경영대학, 사범대학, 사회과학대학, 문과대학, 의과대학, 미래융합대학, 예술체육대학, 소프트웨어융합대학, 국제학부, 프런티어학부대학이 있으며, 68개의 학과(부)가 있다. 또한 일반대학원, 정보통신대학원, 교육대학원, 경영대학원, 공학대학원, 정책대학원, 물류전문대학원, 법학전문대학원, 상담심리대학원, 제조혁신전문대학원, 보건대학원과 부속기관 12개, 부설 연구소 79개 및 부속 학교 2개를 두고 있다. 1954년 인하공과대학부터 1972년 종합대학으로서 인하대학교 그리고 2024년 현재를 보면 대한민국의 사회·경제적 변화 못지않은 과정을 밟아왔다.

지난 2022년 인하대병원은 '인하대학교-김포도시관리공사-풍무역세권개발'과 '인하대학교 김포메디컬캠퍼스' 조성을 위한 포괄적 상호협력의 업무협약(MOU) 체결했다. 김포메디컬캠퍼스 조성 사업은 2024년 착공을 목표로 김포시 풍무역세권 도시개발 사업 대학 용지 9만㎡의 터에 정석인하학원 산하의 의료 및 교육 시설을 건축하는 매머드 사업이다.

물론, 개교 70년의 인하대에 부과된 과제에 대해서도 사실적 현상을 외면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를테면 사학재단 인하학원 조중훈 이사장의 교육관이 과연 후속 세대에게 그동안 지속 가능한 형태로 관철되어 왔는가에 대한 철저한 검증도 필요하다. 진정(眞正), 진심(眞心), 진의(眞意), 진리(眞理), 진실(眞實)이라는 인하대학교 교훈 '진(眞)'의 가치를 추구하는 진지한 성찰이 요구된다.

최근 인천시는 지역 대학에 해양대학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이미 1970년 10월2일 인하공과대학은 해양대학을 비롯한 이과대학, 경영대학을 병설하는 종합대학 개편안을 문교부에 제출한 바 있다. 1971년 12월 이과대학이 신설되고 해양대학 설립은 무산됐다. 이후 1978년 10월 이과대학에 해양학과가 증설됐다.

1971년 7월28일 수정 제출된 '仁荷大學校 設立認可申請書'에 제시된 종합대학 설립의 필요성은 아래와 같다.

▶첫째, 대학은 교육뿐만 아니라 그 지역사회의 문화와 산업 및 사회 각 분야에 걸친 광범위한 발전에 직접·간접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재언할 필요가 없는 것으로 인구 336만의 경기도 내에 종합대학을 두는 것은 경기도의 발전을 위해서 반드시 요망되는 바이며, 둘째로 인구 80만의 항구도시이며 산업도시인 인천에는 현재 21개 고등학교에서 연간 4300여명의 졸업생이 배출되고 있으며, 이 중에서 3000여명 이상이 서울 시내 각 대학에 통학하고 있는 실정인 바 이들을 이 지역에서 흡수 포용할 수 있는 훌륭한 고등교육기관의 설치가 요망되고 있다.

셋째로, 서울에 인접하여 있는 인천시에 내용이 충실한 종합대학을 설치하는 것은 최근 급증하는 해양운송에 따라 완공을 서두르고 있는 제2 부두의 건설을 비롯하여 정부의 종합개발계획에 따라 경인공업단지 내의 각 산업체에 대한 종합적인 자문과 기술협력을 강화함으로써 점차 비대화하는 서울에의 집중을 막고 산업기관의 지방분산을 기하여 균형 있는 국토개발에 이바지할 수 있을 것이며, 넷째로 부강한 조국건설은 산업의 융성에서 비롯된다는 국내외 유지들의 애국심의 발로로 하와이 교포이주 50주년을 기념하여 1954년 설립을 보게 된 본 대학은 쌓여진 연륜에 따라 착실하게 발전하여 온 역사와 전통이 확고한 대학으로서 성년을 맞이한 차제, 축적된 여력은 종합대학으로 확충·개편할 힘을 비축하고 있으며, 다섯째로 현재 인하공과대학은 21개 공학과에 3300여명의 학생 정원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국내 타 종합대학에 비하여 하등 손색이 없는 규모로써 단과대학으로서는 너무 비대한 것으로 이를 제도적으로 합리화할 필요가 있다 할 것이다. 여섯째로, 전술한 사실 이외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종합대학을 건설하기 위해서 일치단결하여 노력하는 교직원과 학생을 지원하고 강력한 재정적 뒷받침을 다하는 학교재단의 의욕과 능력이 갖추어져 있다는 사실을 들 수 있겠다.

▲ 양윤모 인천개항장연구소 연구위원
▲ 양윤모 인천개항장연구소 연구위원

/양윤모 인천개항장연구소 연구위원

/인하대학교 총동창회·인천일보 공동기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