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물밀물

때만 되면 떠벌리는 극우 전쟁광들의 얘기가 아니다. 필요할 때마다 한반도 전쟁 위기론을 부추기는 미국 내 방산업자들의 레퍼토리도 아니다. 1994년 북핵 위기 당시 클린턴 행정부의 대북 협상 수석대표였던 로버트 갈루치 조지타운대 명예교수가 최근 한 외교안보 저널에 기고한 글에서 나온 얘기다. 갈루치 교수는 당시 '제네바 합의'의 주역이었다. 그는 이 글에서 올해 동북아에서 핵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최소한 염두에 둬야 한다고 밝혔다. 한국과 미국을 겨냥한 북한의 핵무기 공격이 매우 우려된다는 얘기다. 한국전쟁 이후 전쟁이 없었던 한반도에서 70여년 만에 전쟁이, 그것도 핵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는 갈루치 교수의 발언은 무시하고 싶을 만큼 충격적이다.

최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언행은 이미 도를 넘어섰다.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는 등의 무력시위 단계가 아니다. 남북관계를 전쟁 중에 있는 '적대적 양국 관계'로 규정했다. 조평통 등 남북관계를 담당하던 대남 기구도 모두 없애 버렸다. 심지어 지난 15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는 “조선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경우에는 대한민국을 완전히 점령·평정·수복하고 공화국 영역에 편입시키는 문제를 (북한 헌법에) 반영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무력통일 의지도 확인했다. 그러면서 전쟁을 피할 생각이 전혀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김 위원장이 이렇게 강경하게 나오는 것은 처음이다.

윤석열 대통령도 16일 국무회의에서 김정은 정권을 '반민족적·반역사적 집단'으로 규정하며 “북한이 도발해 온다면 몇 배로 응징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쟁이냐 평화냐'하는 협박은 더 이상 통하지 않을 것이라며 정면 대결의 의지를 거듭 확인했다. 겉으로만 본다면 자칫 작은 불씨가 점화돼 전쟁이 일어나도 이상할 것 같지 않은 모습이다. 그러나 정부의 인식은 그다지 심각해 보이진 않는다. 대통령실은 4월 총선을 겨냥한 '대남 심리전'으로 보고 있다. 신원식 국방부 장관은 “짖는 개는 물지 않는다”며 “국민은 북한의 위협, 공갈에 너무 휘둘리지 말라”고 말했다. 사실 국민도 휘둘리고 싶지 않다.

핵심은 고조되는 '핵전쟁 위기론' 앞에 이를 관리, 제어할 수 있는 주체가 없다는 점이다. 미국은 한미연합훈련 명분으로 전략자산을 수시로 전개하고 있다. 중국은 대만에 대한 압박을 더 강화하고 있다. 러시아도 핵전쟁 가능성을 경고하고 있다. 남북은 정면 대결을 공언했다. 계속 이대로 간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브레이크가 없다. 대북 정보에 밝은 로버트 칼린 연구원이 최근 '38노스'에 기고한 글에서 “한반도 상황이 1950년 6월 초반 이후 그 어느 때보다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마침 오는 4월 총선을 앞두고 있다. 일각에서는 '신북풍' 얘기도 나오고 있다. 진짜로 설마가 사람 잡는 것은 아닌지, 과거 어느 때보다 총선 정국이 불안하다. 갈루치, 칼린 등의 핏빛 전망이 빗나가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 박상병 시사평론가
▲ 박상병 시사평론가

/박상병 시사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