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물밀물

1979년 12월 12일 발생한 군사반란을 다룬 영화 '서울의 봄'이 관람객 1000만을 돌파했다. 필자는 당시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있었지만, 어떻게 영화화되었는지 궁금해 영화관을 찾았다. 영화의 결말이 뻔한데도 보는 내내 긴장을 했고, 속에서 분노가 치밀었다. 국가와 국민을 지켜야 할 군 장성들이 권력과 개인 영달을 위해 국가는 내팽개치고 반란을 일으켜 권력을 장악하는 과정, 이 과정에 자신의 개인적 안위만을 위해 몸 사리는 고위 공직자들, 국민을 위해 충성하지 않고 조직(하나회)에 맹종하는 반란세력의 행태를 보며 암울했던 1970년대와 80년대가 머리에 떠올랐다.

필자는 1980년대 미국 유학을 하며 도서관에서 제일 먼저 찾아본 자료가 '광주 5·18 민주화 운동'에 관한 기사였다. 당시만 하더라도 한국에서는 '5·18'을 '광주사태'로 김대중 전 대통령(혹은 북한 공작원)이 선동하여 발생한 것으로 거짓 알려졌었다(하긴 지금도 그렇게 믿는 사람이 있다고 하니 쯧쯧). 그래서 미국에서는 '5·18 광주'를 어떻게 다루었는가를 찾아보았는데, 신문에 '전두환 독재 타도'를 외치는 사진을 보도한 것이 기억난다. 5·18 당시 서울에 있던 필자는 전두환이 합동수사본부장으로 매스컴에 자주 등장한 것은 알았는데, 국가가 전두환 손에 놀아나는 것은 일반 시민으로 알지를 못했었다. 그런데 광주에서는 1980년 5월에 이미 전두환 독재를 예상하고 '타도 전두환'을 외치며 '광주 민주화 운동'을 일으켰다는 내용을 보고 깜짝 놀랐었다.

그러면서 느낀 것이, 한국 언론은 도대체 무엇을 보도한 것인가? 1980년 5월 민주항쟁이 전두환 독재 타도를 외친 것을 진정 몰랐었나? 아마도 당시 반란세력이었던 신군부의 언론탄압이 두려워 올바르게 보도 못 했을 것으로 추측은 된다. 1970년대와 80년대 얼마나 암울했던 시기였던가? 박정희 독재체제가 김재규 총탄에 무너지고 서울의 봄이 오는가 했더니, 전두환 정권이 등장하여 다시 엄동설한이 계속되었으니….

당시를 고발한 '서울의 봄'이 천만 관객을 돌파한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첫째, 공권력을 행사하는 군인·검찰·경찰에는 절대 사조직이 있어서는 안 된다. 둘째, 국민이 역사를 바로 알고 깨우쳐야 5·16쿠데타, 12·12 군사반란 같은 국가 불운을 방지할 수 있다. 역사를 바로 알자. “실패하면 반역 성공하면 혁명이 아니라, 혁명인지 반역인지는 권력이 아닌 역사가 심판한다”는 것을 '서울의 봄'은 보여준다.

▲김천권 인하대 명예교수∙인천학회 고문.
▲ 김천권 인하대학교 명예교수

/김천권 인하대학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