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의 정치 복원하고 싶다면 자기 성찰과 반성해야
이번 총선, 부실한 정치세력 퇴출시키는 계기 삼아야

신년 벽두 백주 대낮에 제1야당 대표가 테러를 당했다. 범인은 60대 남성이다. 정확한 범행동기는 앞으로 수사를 통해 밝혀지겠으나, 지금까지 알려진 바를 종합해 볼 때 '증오정치'에 '과몰입'한 자의 범행인 듯하다. 그는 평소 특정 성향의 유튜브에 몰두했고, 경찰에서 “이재명 대표를 죽이려고 했다”고 진술했다 한다. 어쩌다가 한국정치를 장악한 '증오 정치'의 메커니즘이 평범한 인물을 자발적 테러범으로 만드는 지경에 이르렀는가. 두렵다.

조지 오웰이 1948년 발표한 소설 '1984'에는 '2분간의 증오'라는 시간이 등장한다. 모든 국민이 당시 최첨단 장비인 텔레스크린에 비치는 적들의 영상을 보며 2분 동안 격렬하게 증오를 드러내는 시간이다. 흥분한 관객은 전부 일어나 발작하듯 발을 구르고 고함을 지른다. 증오 표현이 약하면 사상경찰에 끌려가 고초를 겪기도 한다. 매일매일 진행되는 '2분간의 증오' 외에 때때로 '증오주간'도 시행된다. 증오가 몸과 마음에 각인된 국민들은, '전쟁은 평화, 자유는 예속, 무지는 힘'이라는 국가의 거짓구호를 진실이라고 받아들인다.

21세기 한국에서 텔레스크린은 극단성향의 유튜브와 SNS로 진화했다. 자신이 믿고 싶은 정보와 생각은 알고리즘을 통해 걸러지고 확증편향을 거듭 증폭하는 메시지만 반복된다. 급기야 상대방에 대한 증오는 내면화를 넘어 몸에 밴다. 사실 확인과 정보의 진위 판단은 관심 밖이다. “테러범이 나무젓가락으로 정치인을 찔렀다”는 왜곡된 주장이 영상분석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버젓이 방영된다. 증오심으로 뭉친 자들은 '가짜뉴스'를 자신들의 커뮤니티로 끊임없이 퍼 나른다.

증오는 가장 값싼 정치 동원의 수단이다. 적과 동지를 선명하게 갈라주는 듯한 환각을 불러일으킨다. 국가기관이 '댓글부대'를 운영하고, 관변단체가 특정이념 유튜버를 끌어들이고, 선거캠프와 비선 조직이 여론조작용 소프트웨어를 개발한다. 정치권이 음지에서, 양지에서 상대를 악마화하는 조작에 공을 들인 지 20여 년. 급기야 야당 대표를 암살하려고 자진해서 칼을 휘두르는 자가 등장했다. 2006년 6월 정치인 박근혜를 커터 칼로 그은 사건, 2022년 3월 정치인 송영길을 망치로 테러한 사건은 이번 사건의 예고편이었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나 극단적 이념과 수단을 추종하는 소수는 존재한다. 민주주의는 대화와 타협을 통해 합의를 도출해가는 정치체제다. '증오정치'의 유혹이 정치의 장에 번지지 못하도록 부단히 경계하고 차단해야 시스템이 유지된다. 하지만 한국정치는 지난 30년간 양극화의 길로 치달았다. 원인은 복합적이다. 제도와 고질적 정치문화가 얽히고설켰다. 미디어환경의 급변과 정치 팬덤의 등장, 세계적 퇴행 추세까지 밀려들었다. 마침내 이 정부 들어서는 대화와 타협의 파트너인 상대를 범죄집단인 양 몰아붙이는 일이 다반사가 되었다.

'증오정치'를 청산하고 신뢰의 정치를 진정으로 복원하고 싶다면 자기 성찰과 반성부터 내놓아야 한다. 상대 눈의 티끌보다 자기 눈의 들보를 누가 먼저 인정할 것인가. 정치인들이 스스로 변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결국 유권자와 시민사회가 나서는 수밖에 없다. 이번 총선은 증오의 동원 외엔 정책도 콘텐츠도 부실하기 짝이 없는 정치세력을 퇴출시키는 계기여야 한다.

/양훈도 논설위원 brock3334@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