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주영 경제부장.
▲ 이주영 정치부장

어수선하게 한해를 시작한다. 일주일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한 달은 더 산 거 같은 피로감이다.

하루가 어떻게 지나는지 모르게, 일이 발생한다. 그럴 수 있다고 치부하기엔 너무 황당하고, 당황스럽고, 난잡하다.

갑진년 시작과 함께 사건이 터졌다.

인천 풀뿌리 민주주의의 중심에 서 있는 허식 인천시의회 의장이 5·18 민주화운동을 부정하는 내용으로 꽉 찬 신문 특별판을 동료 시의원에게 배포했다. 서울에서 발행하는 이 신문 특별판은 '5.18은 DJ(김대중)세력·북이 주도한 내란', '5.18 유공자 상당수가 5.18과 관련 없는 인물'이라는 등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거짓과 선동으로 가득하다.

국민의힘을 이끄는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광주광역시를 찾아 헌법전문에 5·18 민주화운동의 얼을 반드시 넣겠다고 다짐한 이 날, 같은 당 인천시의회 의장은 5·18 민주화운동은 “조작됐다”는 신문을 뿌린 것이다. 한 위원장의 광주광역시 방문은 총선을 앞두고 전라도 민심을 달래려는 '정치쇼'라는 비아냥을 듣게 됐다.

결국 <인천일보> 보도 하루만인 4일 “5·18 민주화운동을 북한 소행 등으로 왜곡하는 내용을 담은 자료를 배포한 당사자를 조속히 당 윤리위원회를 개최해 논의하기로 했다”고 결정했다. 총선이 불과 90일밖에 남지 않아 일사불란해야 할 국민의힘이 같은 당 지방광역시의회 의장과 엇박자에 놓였다면 선거 결과는 뻔하지 않을까. 한 위원장의 발언이 웃프다. “허 누구요?” 선을 긋고, 손절하려 했건만 사건은 터졌고, 세상 모두가 알게 됐다.

이미 상처 입은 민심은 징계만으로 달래기 역부족이다. 잊을만하면 터지는 5·18 민주화운동 '부정' 행위와 '폄훼' 논란을 이번 기회에 발본색원하지 못한다면, 반드시 행위는 반복된다.

정권 유지를 위해서면 국민을 짓밟고 목숨을 앗아가는 것쯤에 거리낌 없던 신군부 쿠데타 정권. 1979년 10·26 사태 후 겨우 서울의 봄이 왔건만, 군홧발로 철저히 뭉개버렸다. 가족이 총부리에 목숨을 잃고, 도시가 쑥대밭이 된 것에는 눈과 귀를 막고 오직 민중 저항의 몸부림만을 잘못이라 호도하는 '소년'과 '그들'. 프랑스혁명도 '소년'과 '그들'에겐 폭도의 내란으로 비칠까.

요즘 한창 유행하는 '확증편향'이란 심리용어가 있다.

구미에 맞는 정보만 취사해 왜곡된 선입견과 가설로 객관적 사실을 삐뚤어지게 바라보는 행위를 말한다. 알고리즘은 어떻게 알고, 끊임없이 관련 영상과 기사 등을 퍼 나른다. 더 늪에 빠지고, 더 홀리게 된다. 확증편향은 세대와 계층을 막론한다.

강대강, 극한 대치에 빠져버린 요즘 세태는 증오가 신념이 돼 거침없다. 말과 생각뿐이던 확증편향은 행동으로까지 확대됐다. 제1야당 대표를 테러한 60대 남자가 제출한 '8쪽 변명문'은 증오를 넘어 신념에까지 치달았다. 얼마 전 스스로 목숨을 끊은 배우는 증오에 넘친 경찰 수사와 언론, 인터넷 댓글에 이기지 못했다.

그렇기에 인천시의회 의장의 거짓 선동문 배포는 증오가 신념이 됐다고밖에 볼 수 없다.

허 의장이 <인천일보> 기자를 고소했다. 정치적 의도는 없고, 배포 또한 특정 시의원이 부탁해 전달했다는 의견이다. 국민의 저항이 가소롭고, 당의 징계 또한 하찮나. 허 의장의 신념에 견제와 감시 대상인 인천시가 우스워졌고, 창피함은 300만 인천시민의 몫이 됐다.

/이주영 정치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