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창영 평화협정운동본부 집행위원장.<br>
▲ 지창영 평화협정운동본부 집행위원장

 

“유사시 핵무력을 포함한 모든 물리적수단과 력량을 동원하여 남조선 전 령토를 평정하기 위한 대사변준비에 계속 박차를 가해나가야 하겠습니다.” 북의 최고지도자인 조선노동당 김정은 총비서가 '2024년도 투쟁방향에 대하여'라는 연설을 하면서 언급한 내용이다. 2023년 12월 26일부터 30일까지 진행된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9차 전원회의 확대회의에서였다.

현재 진행 중인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하마스-이스라엘 전쟁에 이어 대만과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일찍이 있었다. 2024년에는 그런 우려가 한 발 앞으로 다가오는 것을 실감한다.

2018년만 해도 한반도에는 봄기운이 완연했다. 북의 결단으로 평창올림픽이 남북 화해의 축제가 되었고, 그 훈풍 속에서 남북 정상이 역사상 최초로 손을 맞잡고 군사분계선을 넘나들며 종전을 약속했다. 북은 선제적으로 풍계리 핵시설을 폭파함으로써 평화의 의지를 세계에 천명했고 미국의 트럼프 당시 대통령도 최초의 북·미 정상회담에 응하여 북과 관계 개선을 약속했다. 그러나 봄은 거기까지였다. 우여곡절 끝에 이듬해 열린 북-미 2차 정상회담이 미국의 돌변으로 파탄된 후 강 대 강 대결은 점점 그 강도를 더해 왔다.

미국의 요구로 '한미워킹그룹'이 출범하여 남북 화해 약속의 이행에 제동을 걸면서, 미국이 개입하는 한 한반도 평화는 어렵다는 점이 뚜렷하게 확인되었다. 대한민국에는 역사상 가장 친미적인 대통령이 탄생하여 미국과의 동맹 강화를 강조하고 있다. '미국과의 핵 공유'와 같은 강경 발언을 공공연히 하면서 한미연합군사훈련을 강화해 오더니 급기야 9·19 군사합의서의 파기를 몰고 왔다. 통일에 대한 북의 인식과 정책 변화에는 이러한 배경이 깔려 있다.

거두절미하고,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그 양상이 어떻게 전개될까? 과거 전쟁과는 확연히 다를 것이다. 결정적인 차이는 미국의 개입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점이다. 1950년에 일어난 전쟁에서는 미국이 개입하면서 이승만 정부의 반격이 가능했다. 그러나 오늘날 상황은 사뭇 다르다. 동유럽과 중동에서 이미 전개되고 있는 두 개의 전장에도 미국은 직접 개입하지 못하고 간접 지원만 하면서도 버거워하고 있다. 더욱이 북은 핵무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그리고 군사 정찰위성을 배지하고 있어 미국으로서는 상당한 부담을 안게 되었다. 본토가 공격받을 것을 감수하면서 한반도 전쟁에 개입하리라고 보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이다.

전쟁 위기로 내몰리고 있는 우리에게는 중대 결단이 필요하다. 지난 시절처럼 전쟁과 평화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있을 수 없게 되었다. 길은 두 갈래다. 미국을 믿고 북과 일전을 불사할 것인가, 아니면 자주적 결단으로 평화의 문을 열어젖힐 것인가. 전자가 죽음의 길이라는 것은 나라가 사라질 위기로 내몰린 우크라이나가 이미 보여 주고 있다. 우리가 살길은 역시 자주다. 미국에 의존하던 관행에서 과감히 벗어나 민족의 손을 잡아야 한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가 이 길을 택하리라고 기대하기는 틀린 것 같다. 남은 것은 국가의 주인인 국민 몫이다. 전쟁을 막기 위한 특단의 운동이 필요하다.

1972년에 남과 북은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을 통일의 세 가지 원칙으로 합의했고, 남북 정상회담이 있을 때마다 이를 거듭 재확인하고 구체화했다. 그러나 과연 우리가 자주적이었는가를 되짚어 보아야 한다. 자주를 이루지 못하면 평화도 민족대단결도 꿈속의 이야기에 불과함을 오늘의 현실은 말하고 있다. 사즉생의 각오로 자주의 길을 열어젖혀야 한다. 전쟁은 막아야 하지 않겠는가.

/지창영 평화협정운동본부 집행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