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종필 작가의 '커뮤니티 판화 우리 마을에는' 전시 모습.

영화 '서울의 봄'이 관객 1000만을 돌파했다고 한다. 관객이 1000만을 넘어섰다는 것은 그 영화가 시대정신을 잘 보여 주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시대정신과 세계관이 잘 융합된 작품을 만나면 감상자는 그것을 자기의 것으로 내면화하게 된다.

예술가의 작품과 그의 삶은 분리될 수 없기에 예술가는 작품뿐만 아니라 삶을 통해서도 평가를 받는다. 즉 예술적 가치인 미를 추구하는 작가의 삶에서 아름다운 예술품이 나온다. 삶이 예술인 이유가 거기에 있다.

작품에는 지역성과 독창성과 시대성이 담겨 있는데 이 글에서는 주로 시대성을 말하고자 한다.

예술가의 작품에는 그가 몸담고 사는 사회의 삶이 녹아 있다. 이를 시대성이나 시대정신이라고 부른다. 시대정신에는 그 시대가 해결해야 할 역사의 숙제가 있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며 소통의 대상은 대중이다. 그러므로 그 시대에 필요한 주제를 선택하게 된다. 주제는 시대정신과 연결되므로 이를 어떻게 개성 있게 표현할 것인가? 이것이 작가에겐 필생의 화두이다.

예술가나 지식인은 시대정신을 외면하지 않기에 때론 고난의 길을 걷기도 한다. 시대정신은 권력자에게서 나오지 않고 민중에게서 나온다. 시대정신을 구현하고자 하는 것은 타자가 아니라 내적인 동기에서 나온다. 민중의 고난을 작품으로 구현한 작품은 당대에 인정받을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진정성과 독창성이 깃든 작품은 언젠가 하늘의 별처럼 빛난다. 시대의 고민을 안고 민중과 호흡을 같이하는 예술가들은 펜과 붓을 무기로 사회적 책임을 방기한 적이 없었다.

한국의 근현대사는 고난의 역사이다. 고난은 고통을 주지만 고난 속에서 인간은 정금같이 단련된다. 한국 민중은 고난의 역사를 통해 민주의식을 각성하였고 민주주의의 발전을 이룩했다. 동학운동, 삼일운동, 4·19운동, 87년 민주항쟁 등을 통해 시민들의 민주의식이 발전하였다. 민중의 각성은 민주주의의 발전을 의미한다. 이 과정에서 예술가들 역시 고난에 동참하기도 하였고 그 반대인 경우도 있었다.

예술가들의 작품은 예술가 개인의 창작물인 동시에 때론 그 시대의 공동 창작물이다. 작가는 동시대인들과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소통하기 때문이다. 필자는 최근에 겪은 두 가지 일을 통해 이를 실감하였다.

첫째는 얼마 전 인천학생교육문화회관에서 본 판화전시회이다. 그 판화전시회는 작가와 주민들이 함께 협업하여 만든 커뮤니티 판화였다. 일상의 삶을 예술에 담는 커뮤니티 판화는 여러 사람들이 협업하여 만드는 대형 판화를 말한다. 각 동네의 대표적인 상징과 키워드를 뽑아 밑그림을 그리고, 나무로 판각하는 작업을 6주간 한다. 물론 이를 주도하고 이끄는 리더는 판화 작가의 몫이지만 지역 주민들이 창작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둘째는 인천 서구 대곡동 고인돌을 본 경험이다. 필자는 얼마 전 6년 만에 그곳에 다시 찾아가 고인돌을 보았는데, 대곡동 마을의 수많은 고인돌은 오랜 옛날 그 지역 사람들이 협업하여 만든 조형물이다. 고인돌은 요즘 말로 하면 거대한 추상조각물 아닌가. 고인돌은 영원성을 보여주고자 그 고장의 자연석을 골라 덜 다듬은 모습으로 자연의 미를 살린다. 질박하고 소박한 한국의 미를 잘 보여 주고 있다.

고대로부터 일상의 삶과 예술이 분리되지 않았다. 앞으로 더욱 예술은 인공지능의 등장으로 인해 공동이 창조자가 되는 동시에 감상자인 시대가 될 것이다. 이제 대중과 예술가의 경계가 점차 엷어지는 시대가 되었다.

▲ 연창호 송암미술관 학예사.
▲ 연창호 검단선사박물관 학예사.

/연창호 검단선사박물관 학예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