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전세사기' 수사과정에서 감정평가사와 법인이 범죄에 개입된 사실이 드러났다. 정씨 일가족이 작당하여 피해자 214명으로부터 보증금 225억원을 가로챈 이 사건에서 감정평가사와 법인의 관여가 처음으로 공식 확인되었다. 일가족 가운데 아들의 직업이 감정평가사여서 처음부터 '뻥튀기감정'(일명 UP감정)이 이루어졌고, 아들이 소속되었던 감정평가법인이 전세사기에 활용된 오피스텔을 감정한 사실도 밝혀졌다. 수원 사건 피해자들은 진작부터 아들 정씨의 개입 의혹을 제기해왔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는 애초에 시세산정이 어려운 신축빌라 등의 경우 공시가격의 150%를 집값으로 인정해줌으로써 전세사기범들이 활개 칠 수 있는 여지를 주었다. 전국적으로 전세사기 사건이 터지자 HUG는 지난해 5월부터 'HUG선정 감정평가기관' 37곳을 지정해 이들의 감정평가서만 보증근거로 삼고 있다. 하지만 '수원 사건' 아들 정씨가 3년여 근무했던 법인도 선정법인 명단에 들어가 있고, 이 법인이 정씨네 오피스텔 건물을 감정평가한 증거도 이번에 확인되었다. 이래서야 HUG선정법인의 신뢰성에 의구심이 제기되는 게 당연하다.

아들 정씨는 애초에 '무자본 갭투자' 사기가 가능하도록 아버지의 요구에 따라 신축빌라 등의 감정평가를 크게 부풀려 책정했다. 그의 수법은 특이하게 고가 거래된 사례를 기준으로 감정가를 산정하는, 전형적인 'UP감정'이었다. 감정평가사에게 주어져 있는 가격 보정(補正) 권한을 범죄를 위해 악용한 것이다. 전세사기 사건에 대한 처벌과는 별개로 범죄에 연루된 감정평가를 한 경우 가장 무거운 징계가 내려져야 마땅하다. 또한 법인은 즉각 HUG선정법인에서 제외해야 한다.

이번 기회에 감정평가법인에 대한 감시·감독 시스템을 대폭 강화해야 할 것이다. 전세사기와 같은 형사범죄, 민사 분쟁, 국가배상 등에서 관계자들의 첨예한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감정평가의 신뢰도를 높이는 일이 시급하다. 외부감사 의무화 등 다양한 개선안이 이미 제기된 상태이므로 정부는 가장 실효성 높은 개선책을 서둘러 제시해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