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가까운 곳이라 가끔 국립서울현충원을 찾는다. 사색하기에 도심에서 이만한 곳을 찾을 수 없다. 적멸에 들어간 수많은 영혼을 보면서 삶과 죽음의 의미도 새삼 되새겨 본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묻고 또 물어보지만 하늘은 높고 땅은 골곡지다. 그저 경내 이곳저곳을 다니며 비석에 새겨진 이름들을 맘속으로 한 분씩 불러볼 따름이다.
현충원에서 꼭 둘러보는 곳이 있다. 임시정부요인묘소와 독립유공자묘역이다. 일제강점기 때 항일투쟁에 앞장섰던 선열들이 잠들어 있다. 나도 모르게 고개가 숙어지는 엄숙한 공간이다. 그리고 우리가 처한 오늘의 현실에 부끄러운 마음도 감출 수 없는 곳이다. 거기서 멀지 않은, 경관 좋은 언덕에 장군 제2묘역이 있다. 이곳은 참으로 당황스럽다. 죽어서도 야스쿠니 신사에 묻히고 싶다던 신태영, 그와 일본 육사 동기인 친일파 이응준 등이 묻혀 있다. 그 아래가 박은식, 이상룡, 지청천 등 기라성 같은 인물들이 잠들어 있는 임시정부요인묘소다. 어째서 서로가 적이었던 그들이 위아래로 함께 묻혀 있어야 하는지 맘이 영 편치가 않다. 현충원의 불편한 진실이다.
오랜만에 많은 사람이 현충원을 오간다는 소식이다. 이번엔 주인공이 정병주, 김오랑, 정선엽 등 12·12 쿠데타 때 반란군과 맞섰던 참군인들의 묘소라고 한다. 영화 '서울의 봄'이 흥행을 이어가면서 시민들의 관심이 부쩍 높아졌기 때문이다. 특히 젊은이들이 이 영화를 보면서 미처 몰랐던 현대사의 비극을 제대로 체감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반갑고 다행스러운 일이다. 특히 정병주 장군의 삶은 눈물 없인 들을 수 없다. 그는 장군 제1묘역에 잠들어 있다. 그러나 거기엔 당시 반란군이었던 백운택, 일제 간도특설대의 상징 김백일, 신태영의 아들 신응균도 묻혀 있다. 서로 적이었던 그들이 왜 여기서도 함께 묻혀 있어야 하는지 현대사의 비극은 대대손손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23일 광화문에서 12·12 쿠데타의 수괴 전두환 2주기 추모식이 있었다. 추모식 위원장은 정병주를 배신한 박희도였다. 군중들 앞에 구순의 박희도는 손을 흔들며 환하게 인사했다. 성찰도, 두려움도, 부끄러움도 없다. 그들의 천하를 이뤄내고 우리 시대의 주류가 된 그들이 지금 무엇을 두려워하겠는가. 물론 100년 전의 역사도 그랬다. 이런 판국에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그 시비를 가려본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마침 대학교수들이 올해의 사자성어로 '견리망의(見利忘義)'를 선정했다. 눈앞의 제 이익만 좇는 오늘의 세태를 한탄하는 말이다. '서울의 봄', 현충원을 찾는 우리 젊은이들만큼은 부디 '의(義)'를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래야 피눈물로 범벅된 질곡의 우리 현대사를 보듬어 안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박상병 시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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