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석원 우크라이나 키이브국립대 교수.
▲김석원 우크라이나 키이우국립대 교수

박물관은 문화의 척도이고 보석이다. 얼마 전까지도 그런 중요성을 몰랐다. 어려서는 박물관에 관하여 아예 관심이 없었고 가본 적도 없다. 몇 해 전 한국에 가서 신흥동 1가 6번지하고 비슷한 수도국산 달동네 박물관을 보고, 김일 레슬링 하던 날 “테레비 좀 보여주세요” 하면 “발 닦고 오너라” 하시던 인배형 어머니가 생각났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우리 어머니가 수도국산 박물관을 보셨으면 엄청나게 좋아하셨으리라….

우리나라 같이 역사가 오래고 전통과 문화 수준이 높은 나라에 박물관이 그리 많지 않은 것은 유감이다.

작년에 피난 갔던 루마니아 시골 마을은 200여 가구가 사는데 박물관이 2개 있었다. 학교 옆에 그 마을의 전래와 지난날 행사, 돌아가신 신부님과 마을 어른들의 이름 및 사진이 있는 마을 향토 박물관과 우리가 머물던 집 주인이 개인적으로 헛간을 개조하여 3, 4대 조상 때부터 쓰던 물건과 사진 등을 전시한 개인 박물관이 있었다. 우크라이나에는 인구 만 명 정도 되는 소도시나 시골에 가도 여러 박물관이 있다. 친구가 사는 가이보른은 인구 만여 명의 작은 도시이지만 그 지방 출신의 유명한 목공예 작가의 작품을 모아 놓은 박물관이 있다.

대영박물관에 가면 그 규모나 작품에 압도되어 도대체 어디서부터 둘러보아야 할지를 모른다. 그만큼 영국민의 자존심과 자부심을 느낄 수 있다. 지난여름 둘러본 미국의 박물관이나 미술관도 규모나 작품 수에서는 세계 정상급이다.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는 빈센트 반 고흐, 클로드 모네 등 세계적인 예술가 사이에 독립적으로 전시된 백남준 선생님 전시실에서는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서구 자본주의 나라에는 상술이 발달하여 박물관에서 선물이나 기념품을 팔아 돈을 쓰게 만든다.

역사가 오래고 문화가 넘쳐나는 키이우에는 300개 이상의 박물관이 있다. 역사, 문화, 미술, 건축, 자연사, 문학, 예술 작품 박물관 외에도 작가 시인 음악가 화가 등 유명인이 태어나거나 살던 집은 기념(메모리얼)박물관이다. 그 외에도 특이하고 기념하고 보존해야 할 수많은 박물관이 있다. 우리나라에도 이색 박물관이 많지만 우크라이나에서 필자가 가 본 특이한 박물관에는 실험실 박물관(물리 화학 생물 등), 꿈 박물관(심리 및 잠에 관한 박물관), 화장실 박물관, 잘 안 쓰는 물건 박물관, 장난감 박물관, 약국 박물관, 물 박물관, 하수구 박물관, 비밀경찰(KGB) 박물관 (범죄 및 고문 기구 등 전시), 빵 박물관, 해파리 박물관, 소리 박물관(많은 오디오 모음), 체르노빌 박물관, 고물상 박물관(쓰레기로 분류되는 물건들 모음), 구소련시대 물건 박물관… 등 많은 박물관이 있는데 이번 전쟁으로 폭격받은 곳도 있다.

필자가 좋아하는 키이우 안드렙스카 언덕은 거리 자체가 박물관이다. 18세기에 지어진 큰 교회가 우뚝 서 있고 길바닥은 울퉁불퉁한 돌길이다. 주변에는 키이우의 몽마르트르라 할 수 있는 화랑이 늘어서 있으며 온갖 기념품 판매소가 있다. 언덕 위에서는 드니프르강 전경이 보이고 구도심이 훤히 보인다. 그리고 이 거리에도 박물관이 있다. 교회 자체가 박물관이고, 우크라이나 출신이지만 러시아어로 작품을 썼던 미하일 불가코프 생가 박물관에는 그의 흉상이 붉은색 스프레이로 칠해져 있다. 러시아어로 작품을 쓴 그에게 불만을 품은 누군가 화풀이를 했으리… 언덕 밑으로 내려오면 거리 박물관이 있는데 19세기 물건들과 생활상을 볼 수 있는 곳이다. 근처에는 골동품과 구소련시절 오래된 물건을 파는 행상들이 있다. 그리고 우리 집에도 집사람이 수집한 작은 박물관이 있다.

우리나라나 우크라이나나 박물관이 고리타분한 물건만 전시하는 곳이 아니라 어린이에게는 놀이방, 젊은이에게는 공부방, 노인에게는 쉼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석원 우크라이나 키이우국립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