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병덕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부의장
▲강병덕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부의장

바야흐로 민생의 계절이다. 국회가 2024년도 정부 예산안 심의를 시작했다. 언론에서는 이미 예산전쟁, 심의 정쟁을 언급하며, 여야의 격렬한 충돌을 예고하고 있다. 정부와 국회가 예산안을 두고 다투는 건 해마다 있는 일이니 다툼 자체는 차치하자. 예산안 심의의 본질은 먼저 재정의 배분 경로와 규모를 통해 국가의 정책 목표를 가늠하는 데 있다. 또 우선순위의 적절성과 효율성 등을 확인해 그것이 국가의 대내외 실정을 착실히 반영하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정부 예산안의 투명함과 건전성은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검증된다.

그런데 이번 정부의 예산안은 어떤 것도 잘 모르겠다. 우선 2024년도 정부 예산안의 규모는 전년 대비 2.8% 늘어난 656.9조 원이다. 정부는 이 예산안을 두고 23조 원의 지출구조조정 노력을 통해 건전재정으로 편성했다고 발표했다. 지출구조조정이 정립된 개념이 아닌 것은 제쳐놓고라도 오히려 총수입이 2.2% 감소했는데, 건전재정 달성이라니 반지성적이다. 더군다나 23조 원이나 되는 지출구조조정이 어디서 이뤄졌다는 것인지 아무것도 공개하지 않고 있어 국회가 검증조차 할 수가 없다.

정부 지출 기능에 따른 16개 분야로 들어가면 염치마저 없다. 이번 예산안에서 삭감 규모가 가장 큰 분야는 교육 분야와 일반·지방행정 분야이다. 각각 12.5조 원, 11.1조 원이 감액되었다. 23년도 사업의 42%에 달한다. 정부는 이렇게 큰 폭의 감액을 놓고 건전재정을 위한 강력한 지출구조조정 노력의 결과라고 밝혔다. 사실과 다르다. 교육 및 일반·지방행정 분야 삭감액이 큰 이유는 24년도 내국세가 23년에 비해 10.1% 감소하면서, 지방이전재원이 자동으로 감소한 탓이다. 정부 주장처럼 재정 건전성을 높이기 위해 불요불급한 사업을 삭감해서 나타난 결과가 아니라는 것이다.

예산의 증감은 크게 세 가지를 보여준다. 첫째, 정치적, 정책적 목적에 따른 의도, 둘째, 경제적, 사회적 환경변화에 따라 결과적으로 발생한 증감, 셋째, 회계 기준 및 통계 기준이 달라지면서 발생한 통계적 착시다. 이 세 가지를 구분할 수 있어야 감액과 증액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예산안은 정부의 주장과 예산의 증감이 서로 다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어 국정을 어떻게 운영하겠다는 것인지 읽을 수가 없다. 예컨대 지난 7월 윤석열 대통령은 ‘과학기술 수준이 그 국가의 수준’이라고 강조해 놓고, 과학기술 분야 예산을 1.6조 원(16%) 삭감했다. 연구개발 예산은 97년 외환위기 때도 줄이지 않았다. 여기에 더해 전 세계가 기후변화 대응이라는 보편적 대의를 협력의 기치로 내건 지금, 재생에너지 및 에너지신산업활성화 예산을 절반 가까이 삭감하는 기염을 토했다.

앞서 예산은 국가의 정책 목표를 보여주고, 배분의 우선순위를 통해 국가의 대내외 실정을 반영한다고 밝혔다. 정부가 밝힌 이번 예산안의 20대 핵심과제는 따뜻한 동행을 위한 약자복지, 경제활력 제고를 통한 양질의 일자리 창출 등이다. 그런데 예산안에 민생이 온데간데없다. 지역화폐 예산 전액 삭감, 사회적경제 예산 60% 삭감, 청년일자리창출지원을 포함한 고용 부문은 2.4조 원 삭감 등 일일이 열거하기도 어렵다. 반면 국무회의 의결만으로 활용할 수 있는 예비비 예산은 30% 넘게 늘렸고, 대통령실 전체 예산은 전년보다 5% 늘어난 1000억 원대로 책정했다. 대국민 소통 강화와 올바른 정책 방향 정립이라는 명분으로 말이다. 가장 높은 증액 항목이 대통령실 청사 공사 등에 사용되는 시설관리 및 개선 예산인데, 소통과 정책에 이 예산이 무슨 도움이 될까.

공자는 <논어> ‘계씨 편’에서 제자 염유에게 “불환과이환불균 불환빈이환불안(不患寡而患不均 不患貧而患不安)”이라고 했다. 적은 것을 걱정하지 않고 고르지 못한 것을 걱정하며, 가난한 것을 걱정하지 않고 편안하지 못한 것을 걱정한다는 뜻이다. 불확실성과 불평등, 양극화와 경제 위기로 민생이 어느 때보다 위협받는 지금, 예산의 적절한 배분은 국민의 편안한 일상을 위한 최소한의 조치다. 가난을 걱정하고, 미래를 두려워하는 사회에서 누가 정부를 신뢰하고, 정치를 믿을 수 있겠나. 공자는 또 다른 말씀도 하셨다. ‘민무신불립’(民無信不立), 백성이 믿어주지 않으면 존립할 수 없다는 의미다. 정부와 정치권이 새기길 바란다.

민생이 무너지면 미래도 없다.

/강병덕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부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