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동여뀌. /사진=국립생물자원관
▲ 대동여뀌. /사진=국립생물자원관

'11월의 인천 식물이라'. 필자에게 퍼뜩 떠오른 식물은 대동여뀌(Persicaria koreensis)이다.

대동여뀌는 대동강 유역에서 자라는 여뀌라는 뜻으로 '대동'이라는 단어가 붙여졌다. 그러나, 필자가 한창 여뀌속 식물을 연구하던 1990년대 말만 하더라도 남한에는 대동여뀌의 서식처가 알려지지 않아 대동여뀌 실물을 본 이가 없었다. 대동여뀌를 찾기 위해 고민하던 중 가을에 남하하는 겨울 철새가 대동강 유역에서 대동여뀌 종자를 먹고 서해안을 따라 남하하다가 서해안 섬들 어딘가에 배설해서 여뀌가 자라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동강에서 남하하는 겨울 철새가 남한에서 가장 먼저 도착하는 곳이 바로 강화도이기에 철새도래지를 추적한 결과 강화도 선두리와 동막리 사이의 제방에서 대동여뀌의 생육지를 발견하였던 희열은 아직도 생생하다.

여뀌류의 속명인 Persicaria는 복숭아나무를 의미하는 라틴어 Persica에서 유래된 것으로 여뀌류 식물의 잎이 피침형으로 복숭아나무의 잎과 비슷한 특징을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대동여뀌의 잎은 매우 가늘고 선형에 가까워 다른 여뀌류와 구분된다. 대동여뀌의 종소명인 koreensis는 “한국산”이라는 뜻인데 만주 지역에서도 대동여뀌로 추정되는 개체들이 있어 우리나라 고유종으로 분류하고 있지는 않다.

여뀌류 식물은 주로 산기슭이나 농로, 강변, 습지 등의 습한 지역에 서식한다. 인가 주변에서 여뀌들을 채집하고 있으면 동네 어르신들은 “그거 못 먹는 건데 왜 뜯어?”라는 질문들을 종종 던진다. 농부들에게 여뀌는 그저 잡초일 뿐이라 트랙터에 짓눌리고, 제초제에 마르거나, 낫으로 베어진 처참한 모습의 여뀌를 만나기 일쑤이다. 어느 해인가 선두리에서도 낫으로 베어져 몇 가닥이 채 남지 않은 대동여뀌를 만난 적도 있었다. 2012년에 마지막으로 확인한 대동여뀌는 선두리 제방 길가의 3~4평 정도 되는 규모로 단 한 번의 제초 작업으로 집단이 자멸할 만큼 위태위태해 보였다.

이번 칼럼에 소개할 대동여뀌 사진을 찍기 위해 강화도로 가보았다. 제방으로 들어서는 입구에 “강화나들길”이라는 푯말이 보인다. 선두리와 동막리를 잇는 제방을 세 번이나 왕복하며 훑었지만, 대동여뀌는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제방 길이 무언가 이상하다. 분명히 제방보다 낮은 아랫길이었고 흙길이었는데, 지금 그 길은 제방과 높이가 같고 파쇄석이 즐비하다. 그렇다. 대동여뀌는 강화나들길 밑에 묻힌 것이다.

사진찍기를 포기하고 나오는 길의 선두포구 어판장 한편에 저어새 표지판이 있다. 저어새는 멸종위기종인 것을 알아주기라도 하니 그나마 나은 편인 거 같다. 대동강에 있다던 대동여뀌가 여기에 있었다는 걸 알려주는 건 90년대 말 채집해서 모교 표본실에 수장한 표본 두 장뿐이다. 왜 그때 사진을 안 찍고, 종자를 따 놓지 않았을까 봐 이제 서야 후회가 밀려온다. 이제는 하늘을 날아가는 저 오리가 다시 한 번 대동강에서 대동여뀌를 물어다 주기를 기대해 볼 수밖에 없다.

오늘도 굴착기와 트럭은 주변 지대 정리에 바쁘고, 탐방객들은 강화갯벌의 광활함을 즐기지만, 그 누구도 대동강에 있다던 대동여뀌가 여기에 있었고, 이제 더는 없다는 사실을 모른다.

▲ 곽명해 국립생물자원관 환경연구관
▲ 곽명해 국립생물자원관 환경연구관

/곽명해 국립생물자원관 환경연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