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석원 우크라이나 키이브국립대 교수.
▲ 김석원 우크라이나 키이브국립대 교수.

요즘 키이우는 전쟁 전과 다름없이 생활하고 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울리던 공습경보가 10월에는 한 번밖에 없었다. 전시 합동 방송에서는 하루 종일 전쟁 상황을 보도하지만, 민영 방송사에서는 축구, 농구, 배구 등 스포츠 방송도 재개하였고 드라마와 영화도 방송하고 있다. 거리에는 맥도날드, KFC, 도미노 피자 등 많은 음식점, 카페, 술집이 문을 열었다.

키이우에서 600∼700㎞ 떨어져 1000여㎞ 펼쳐져 있는 전선이, 길고 추운 겨울을 앞두고 숨 고르기에 들어간 느낌이다. 또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전쟁에도 민감한 반응이며, 미국이나 서구의 지원이 이-팔 전쟁으로 영향을 받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2014년 마이단 혁명으로 친러정권이었던 야누코비치 전 대통령이 러시아로 도망가고 푸틴은 바로 크림을 점령하고 우크라이나 동부지역을 전쟁으로 몰아넣었다. 우크라이나의 크림지역과 동남부 지역은 러시아계 우크라이나인이 700만명이 넘고 러시아어 강세 지역이었다. 러시아의 지원을 받은 분리주의자들이 도네츠크와 루한스크에서 전선을 형성하고 스스로 도네츠크와 루한스크 공화국의 독립을 선언하며 전쟁했다. 거리상으로 600∼700㎞ 떨어져 있었고 동부지역 외에는 공습경보나 폭격이 없어 키이우 사람들은 먼 지역의 전쟁으로 생각했다. 2014년부터 전면전이 일어나기 전까지 양측은 1만5000명 이상의 사상자가 나왔으며 그때부터 계산하면 거의 10년째 전쟁을 하는 것이다.

그러다 작년 2월24일 전면전을 시작하며(푸틴은 특별군사작전이라 명했다) 러시아는 도네츠크 공화국과 루한스크 공화국을 승인하였다. 그리고 전쟁 중 점령지에서 엉터리 선거가 있었고 2022년 9월 크렘린궁에서 푸틴은 헤르손, 자포리자, 루한스크, 도네츠크의 러시아 연방 편입을 선언했다. 러시아가 임명한 4개 주의 주지사와 함께 축배를 들며 만세를 외쳤다. 러시아는 현재 우크라이나의 영토 15% 약 10만㎢를 점령하고 있다. 러시아연방의 하원 격인 국가두마와 상원 격인 연방평의회에서는 단 한 명의 반대도 없었고 러시아 헌법재판소는 만장일치로 4개 주의 러시아연방 편입을 승인했다.

전쟁이 1년 9개월을 맞으며, 우크라이나가 영토의 일부를 내주고 휴전해야 하는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이 든다. 전 세계적으로 전쟁의 피로도가 많이 쌓여 있다. 최대 지원국인 미국은 내년 대통령 선거와 하원을 주도하는 공화당과 상원 다수당인 민주당의 불화로 언제 지원이 약화할지 모른다. 유럽 여러 나라는 겉으로는 유럽의 안보와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우크라이나를 도와야 한다지만 나라마다 사정이 있다. 그리고 헝가리나 슬로바키아처럼 친러시아 정권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팔 전쟁으로 세계의 시선이 중동으로 쏠리고 있다.

우크라이나 국내적으로도 미미하지만 왜 이렇게 전쟁을 오래 하는지 회의감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전쟁 초기 젤렌스키 지지율은 90%가 넘었다. 대통령의 참모나 내각은 강경 일변도이며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테러 국가인 러시아와 대화는 없다는 기조에는 변함이 없다. 여기에 고질적인 병역 비리와 부정부패는 어려운 전쟁을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노회한 푸틴의 전략으로 끝날 공산이 있다. 전선에서는 포병에 의한 포격전과 드론이 난무하는 가운데 러시아군이 점령한 4개 주를 방어하며 몇 년에 걸친 장기 소모전으로 간다면 우크라이나는 진퇴양난에 빠질 수도 있다. 우크라이나군은 애국심과 나라를 구해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전선에 있지만 미국을 비롯한 지원국의 도움이 약해져 전쟁물자가 달린다면 아무리 사기가 높아도 비극적 결말이 일어날 확률이 있는데 지금 전선의 고착화는 이런 조짐의 서막 같아 안타깝다.

/김석원 우크라이나 키이우국립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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