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성현 전 매일노동뉴스 대표
▲ 부성현 전 매일노동뉴스 대표

김금수 선생은 아호인 동야(東野)처럼 노동운동의 너른 들녘이었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인혁당 사건'에서 살아남은 사람으로, 민주노총 지도위원으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이사장으로 기억한다. 선생은 1970년대 한국노총 정책실장과 1990년대 민주노총 지도위원으로 양대 노총에 두루 족적을 남겼다. 지난달 25일 김금수 선생 타계 1주기 추모 '현시기 노동운동 무엇을 해야 하나' 토론회와 선생의 글을 엮은 <김금수 선집 : 노동운동론> 출판기념회가 진행됐다.

오비이락이랄까, 행사 하루 전 민주노총이, 이틀 전 한국노총이 윤석열 정부가 시행령으로 밀어붙였던 노조 조합비 회계 공시를 수용했다. 노조의 작동원리인 '민주성'보다 더 중요한 원칙은 '자주성'이다. 자주성은 가까이는 사용자로부터, 멀게는 정부로부터 독립적 지위를 확보하는 것이다. 외부 누구에게도 통제받지 않는 가운데 조합원에게는 투명하게 예산을 공개하고, 결산과 감사 등을 거치며 동의를 얻는 회계구조를 갖췄기 때문에 이전 정부들에서는 이를 문제 삼지 않았다.

정부는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개선하겠다는 명분을 내걸었다. 정부가 노조의 회계장부를 들여다보겠다는 것은 노조를 잠재적 부정부패 집단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노동은 먹고 사는 문제, 사회적 문제의 총합이다. 사람들 대부분은 노동으로 생계를 이어간다. 임금을 받지 못한다면 그 삶은 지속할 수 없다. 노동은 그래서 경제의 하위개념, 사회의 종속변수 같은 푸대접 받을 성질이 아니다. 경제와 사회의 모든 것일 수 있으며, 모든 것을 관통하는 인간이 살아가는 실존적·실체적 문제이다.

토론회에서 윤효원 아시아 노사관계 컨설턴트는 “87년 노동체제는 청산의 문제가 아니라 완성의 문제”라고 말했다. 동의한다. 1987년 6월 민주항쟁과 노동자투쟁에 자극받아 개헌된 87년 헌법은 두 개의 노동권을 강조한다. 노동의 권리(32조)와 노동3권(33조)이다. 32조는 최소한의 근로조건을 법률로 정한 것이다. 33조는 노동자의 집단적 단결과 단체교섭, 단체행동을 통해 이전보다 나은 노동조건을 스스로 만들 수 있는 권리다. 이 두 가지 기본권이 확립될 때 인간적인 노동체제가 가능하다는 취지다.

그런데 한국은 여전히 노동3권이 보장된 국가로 볼 수 없다. 자본주의의 탐욕과 폭주를 제어할 수 있는, 유일한 무기인 민주주의는 시민 일반이 노동을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달라진다. 문재인 정부의 국정기조였던 '노동존중사회'가 실패한 이유는 노동을 존중받아야 할 대상으로 대상화했기 때문이다. 노동에 온전한 시민권을 부여하고, 노동을 국가 운영의 한 주체로 세워야 했는데 그러질 못했다.

노동이 있는 민주주의가 진정으로 인간적인 민주주의다. 노동의 대표자들이 더 많이 정부위원회에 참여해서 노동의 이해를 대변하고, 양대 노총이 더 밀도 있게 정부 및 사용자단체와 대화하는 게 민주주의 성숙의 척도다. 노·사·정이 협의·교섭이라는 과정을 밟으면서 경험치와 신뢰를 쌓았다면 민주주의는 공고했을 것이고, 지금 같은 퇴행은 없을 것이다. 정부가 노동을 대화 상대로 인정하지 않음에도 노동계가 저자세를 취하는 모습에 안타까워 하는 말이다.

김금수 선생은 “노동운동의 발전은 고난 속에서 이루어져 왔다. …전쟁과 파시즘 체제 아래에서는 혁명의 깃발을 치켜들기도 하면서, 제2차세계대전 이후에는 사회세력화와 정치세력화를 밀고 나가면서 반동의 벽을 허물어 오늘에 이르렀다. 이렇게 본다면, 오늘의 위기상황도, 노동운동의 전진을 결코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낙관주의는 노동운동의 발전에서 요구되는 운명과도 같은 것”이라고 기록했다. 26년 전 IMF 관리체제 시절 썼던 글이지만 오늘에도 통하는 건 노동운동이 그만큼 어렵다는 반증 아니겠는가. '역사는 침체와 고양, 패배와 승리, 정체와 도약의 과정을 반복하면서도 나선형으로 발전한다'는 선생의 믿음은 긴 호흡과 낙관적 자세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운동'이 지닌 숙명일지 모른다.

/부성현 전 매일노동뉴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