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나도 울긋불긋해지는 단풍을 즐기는 가을이 날로 깊어가고 있다. 그렇긴 해도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 아래선 찜찜한 기분을 떨칠 수 없다. 떨어진 은행이 퀴퀴한 냄새를 풍기는 탓이다. 우리에겐 가로수로 흔해, 가을이 무르익으면 그 열매를 밟고 지나기 일쑤다. 은행나무는 병충해에 강하고 도심의 탁한 공기에서도 잘 자라는 특성을 지닌다. 국내에선 경기도 양평군의 용문사 은행나무 등 20여 그루가 천연기념물로 보호를 받고 있다.
아무래도 도심에서 은행잎이 쌓인 길을 걸으며 가을 정취를 느끼기엔 열매에서 나오는 악취가 방해를 한다. 열매를 맺지 않는 수나무만 심으면 되겠지만, 묘목 과정에선 암수 구별을 할 수 없다고 한다. 최근 들어선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고 연구를 거듭한 끝에 1~2년생 은행나무의 유전자를 분석해 성별 파악 방법을 개발했다. 도심 가로수를 수나무 중심으로 대체할 수 있어 자치단체마다 반기는 분위기다.
'은행'이란 이름은 씨의 껍질이 은(銀)빛처럼 하얗고, 씨가 살구(杏)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졌다. 공손수(公孫樹)라고도 하는 은행나무는 자라서 열매를 맺기까지 수십년이 걸린다. 할아버지가 나무를 심으면 손자가 그 열매를 따먹는다는 뜻이다. 우리나라 향교와 서원마다 은행나무를 심었는데, 선비들이 학문을 정진하는 곳을 의미한다. 공자가 은행나무 아래서 학문을 닦았다는 '행단'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인천에도 수령 800여년의 은행나무가 수려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인천대공원 옆에 자리한 장수동 은행나무로, 1992년 12월 인천시 기념물로 지정됐다. 이어 2021년 2월엔 천연기념물로 승격했다. 높이 30m, 둘레 8.6m에 이르는 이 은행나무엔 오래 전부터 마을 주민들이 제(祭)를 올렸다. 마을에 액운이 돌 때는 물론 풍년과 무사태평을 빌기 위해 제물을 바치고 치성을 드린다.
남동구가 이달 말까지 장수동 은행나무 주변에 '광장'을 조성하기로 해 관심을 모은다. 예산 확보에 난항을 겪으며 2년여간 답보 상태에 빠졌던 사업이 드디어 본궤도에 오른 셈이다. 은행나무 일대에 관리사무실, 잔디광장, 산책로, 화장실 등의 휴게공간을 꾸민다. 구는 문화재청에 국비를 신청하는 한편 인천시에 특별교부금을 요청해 총 사업비 47억원을 확보했다.
장수동 은행나무는 다른 곳과 달리 아주 풍성한 가지를 자랑한다. 균형을 잡은 가지들이 멋진 수형(樹形)을 이루며 뻗어 있다. 광장 조성 사업을 마무리하면, 인천의 새로운 '명물'로 등장할 듯싶다. 천연기념물인 이 은행나무를 잘 보전해 시민들에게 사랑을 듬뿍 받는 곳으로 거듭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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