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선웅 인천문화재단 이사∙판화가.
▲ 홍선웅 인천문화재단 이사∙판화가.

우리 민족은 외세의 침입 때 호국불교의 정신을 바탕으로 국가체제를 강화하며 대항하였다.

거란이 개경을 침입하자 고려 현종은 1019년부터 대장경 조판사업을 시작하여 선종 4년(1087)에 완성한다. 이것이 바로 초조대장경이다. 선종은 이어서 대각국사 의천을 중심으로 속장경을 편찬하면서 자주적인 문화강국으로서의 의지를 결속시켜 나간다. 이렇게 완성된 초조대장경판과 속장경판은 대구 부인사로 옮겨져 보관되다가 아쉽게도 고종 19년(1232)에 몽골군의 방화로 모두 소실된다. 고종은 강화도로 천도하자마자 지금의 선원사 터 가까이에 대장도감을 설치하고 남해에는 분사도감을 설치하여 고려대장경 조판사업을 시작하였다. 다시 조판했다고 해서 재조대장경이라고도 하며 판수가 대략 8만1240매에 이르기에 '팔만대장경'이라고도 부른다. 이렇게 완성된 고려대장경은 조선 태조 7년에 지천사에서 점안식을 거행한 후 고령 개경포를 거쳐 외적의 침입이 미치기 힘든 해인사 판전에 지금까지 봉안하고 있다.

초조대장경 인쇄본은 여러 곳에 흩어져 있는데 교토 남선사에 1800권, 대마도에 600권, 국내에는 호림박물관을 비롯해 200권이 있다. 반듯한 송설체로 단정함이 돋보이는 필체이며 '어제비장전' 변상판화는 세밀하고 능숙한 각법이 돋보이는 산수판화이다. 강화에서 조판한 고려대장경은 구양순체의 글씨에 각법은 망치로 갈등을 치는 도타법을 사용하여 각에 힘이 있다. 추사 김정희가 “사람이 쓴 것이 아니고 마치 선인이 쓴 것 같다”며 극찬한 이유가 있다.

동국대 박물관 조사단이 1998년부터 2001년까지 네 차례에 걸쳐 강화도 선원사지 발굴조사를 마치고 강화도가 고려대장경 판각지임을 밝혔다. 그런데 호국의 일념을 안고 판각문화를 주도했던 강화도의 역사가 있었음에도 인천은 여전히 판각 문화에 대해 조용하기만 하다. 일제강점기 때 '인천각'과 '월미도 풍경'을 그린 사또 요네지로의 판화 몇 점이 보이고, 선원사 지하박물관에 출토된 유물이 몇 점 전시되고 있을 뿐이다. 또한 판화가 몇 사람의 개인적인 활동만 보일 뿐 국제판화페스티벌이나 판화비엔날레와 같은 기획은 꿈도 꿀 수 없다.

그러면 판각 문화를 도시의 트랜드로 홍보하고 있는 다른 도시는 어떠한가?

청주는 우왕 31년(1377)에 흥덕사에서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을 금속활자로 인쇄하였다. 이 책은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으로 현재 파리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청주시는 고인쇄박물관을 만들어 금속활자 전수교육관과 근현대 인쇄전시관을 운영하고 있으며, 청주공예비엔날레를 운영하면서 청주시를 글로벌 도시로 홍보하고 있다. 개관 20주년으로 '인쇄문화의 꽃-동아시아 고판화 명품 특별전'을 열고 있는 원주고판화박물관은 동아시아 목판과 목판화를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사립박물관이다. 한선학 관장은 치악산 자락에 박물관을 짓고 정기적으로 고판화 전시회와 국제학술대회를 열고 시민판화체험을 통해 판화보급에 힘을 쏟고 있다. 울산시는 태화강 상류에 있는 반구대 암각화를 내세워 울산시를 판화 도시로 홍보하고 있다. 국제목판화페스티벌과 비엔날레를 울산시의 핵심축제로 개최하면서 한국의 목판화를 세계에 알리고 있다. 한 사람의 판화작가와 군수가 의기투합하여 목판화 도시를 꿈꾸고 있는 곳도 있다. 진천군이다. 진천은 종박물관 옆에 진천군립생거판화미술관을 개관하고 전시회와 판화체험을 통해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있다.

고려대장경을 판각한 인천은 판각 문화에 대한 가치와 비중이 타 지역에 비해 높은 편이다. 그래서 판각문화 콘텐츠를 개발하고 현대판화에 대한 선택과 집중을 통해 지역 정체성과 세계화의 담론을 끌어낼 수 있는 당위성을 지닌다. 디아스포라의 근대적 이주개념과 해양 정체성이 타 지역과 차별성을 가지며 핵심 이슈로 작용하듯 판화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다. 판화가 생활의 미술로 인천시민과 가까워지고 글로벌 예술의 선도주자로 인천을 빛내는 날이 하루빨리 오길 기대한다.

/홍선웅 인천문화재단 이사∙판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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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삶] 민충정공 혈죽도와 조선풍속 판화첩 근대판화 연구를 위해 문학서나 잡지, 신문과 오리지널 판화를 수집하였지만 그중에서도 각별히 관심을 갖고 있는 아카이브가 있다. 하나는 1906년 7월17일자 대한매일신보인데 이 신문 4면에는 양기훈의 목판화 <민충정공 혈죽도>가 실려 있다. 다른 하나는 1930년대 말에 오주환이 운영하는 조선판화미술사에서 관광용으로 제작한 <조선풍속> 판화첩이다.일본은 1904년 제1차한일협약을 체결하면서 재정과 외교권을 박탈하였고 이어 1905년에 제2차한일협상조약(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시종무관장이던 민영환은 고종황제에게 조약의 거부와 파기를 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