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밀레니엄의 첫해, IMF 위기 여파 여전
▲ 비(雨)가 내리고 안개(霧)가 자욱할 때 자동차 운전은 꽤 힘써야(務) 한다. /그림=소헌

“사람의 일생이 결코 길지 않은데, 어찌 그 악다구니 속에 들어가 시달리며 아까운 세월을 허비하겠는가!” 중국의 후한 중엽에는 환관과 황실의 외척이 극도로 세도를 부렸다. '장해'는 인품이 훌륭하고 학문이 뛰어났다. 그의 문하생만 해도 100여명에 이르렀으며, 그의 명성을 듣고 사귀기를 원하는 권문세가의 요청이 많았다. 심지어는 환관 나부랭이들까지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곤 했다. 하지만 그는 때묻은 자들과 섞이기를 마다하여 시골로 들어가 숨어 살았다. 그래도 가르침을 얻고자 하는 사람들이 그 벽촌까지 기를 쓰고 찾아가는 바람에 그의 집 주변이 한순간 저잣거리로 변해 버렸다.

장해는 모함을 쓰고 옥에 갇혔다가 풀려났다. 조정에서는 여러 번 좋은 마차를 보내 등용하려고 했으나, 그는 병을 핑계로 끝내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았다. 여전히 그를 찾아오는 자가 많아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마침내 화음산 속으로 잠적했다. 그리고는 '五里霧(오리무)'라는 도술을 써서 사방 5리 안을 안개로 덮어 아무도 찾아오지 못하게 만들었다.

 

2001년, 우리 사회는 새로운 밀레니엄(millennium)을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첫해로 시작했다. 원칙과 공정을 찾아보기 힘들었다고 한다.

①대통령은 신년사에서 경제위기에 대해 사과부터 시작했다. 경제적으로는 IMF 관리체제(1997~2001)에서 벗어나 회복을 촉진하기 위해 많은 개혁을 시행했으나, 그 여파는 여전했다. 사람들은 여전히 불확실한 현실에서 어려움에 놓였다. ②현직 대통령(김대중)이 집권당 총재직을 사퇴하는 사례를 남겼다. 이는 국민경선제 도입과 함께 정당개혁의 진전이라고 평가되었다. ③'이용호 게이트'가 열리고 '진승현 게이트'가 재현됨으로써 정·관계 로비 의혹이 세상을 흔들어 놓았다. ④국가인권위원회가 출범함으로써 공권력에 의한 인권침해에 대해 국가 차원에서 구제하거나 조처할 수 있게 되었다. '수지 김 피살사건'은 국정원 등이 은폐한 대표적인 사실로 드러났다.

⑤'DJP 공조' 붕괴로 국회는 여소야대로 바뀌었고, 자민련은 원내교섭단체가 무너졌으며, 정국의 주도권은 한나라당으로 넘어갔다. ⑥남북정상회담(2000.6.15.)으로 이루어진 남북관계는 '9·11테러' 이후 다시 경색국면으로 치달았으며, 햇볕정책과 금강산관광사업은 시련에 빠졌다. ⑦사상 처음으로 언론사 세무조사를 실시하였다. 23개 중앙 언론사가 무려 1조3500억원을 탈루한 것으로 밝혀졌고, 조선·동아·국민일보 등 3명의 언론사주가 한꺼번에 구속되었다. ⑧'여성부'가 출범하고 모성보호관련법이 개정되는 등 양성평등사회를 위한 진전을 이루었다. 출산과 육아 책임을 사회가 분담하는 전기가 마련되었다.

 

霧 무 [안개 / 어둡다]

①갑골문에서도 보이는 雨(비 우)는 하늘(一) 저 멀리(冂경)서부터 물방울(氺수)이 떨어지는 모양을 지닌 글자다. ②务(무)는 몽둥이나 작대기로 치면서(攵복) 힘(力)을 다해 일하는 모습이며, 구체적인 싸움의 도구인 창(矛모)을 추가로 넣어 務(힘쓸 무)를 만들었다. ③비(雨)가 내리고 안개(霧)가 자욱할 때 자동차 운전하려면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꽤 힘써야(務) 한다.

五里霧中(오리무중). 5리(약 2㎞) 안이 온통 안개 속이다. 짙은 안개 속에서는 방향을 찾지 못하는 것처럼 일하는 데에 어떻게 판단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모습을 가리킨다. 사물의 행방 또는 사태의 추이를 도무지 알 수 없는 경우에도 쓴다. 특히 정치판에서 局面(국면.어떤 일이 되어가는 형세)이 꼬여 해결할 수 없을 때 '안개 정국'이라고 표현한다.

▲ 전성배 한문학자·민족언어연구원장·<수필처럼 한자> 저자.
▲ 전성배 한문학자·민족언어연구원장·<수필처럼 한자> 저자

/전성배 한문학자·민족언어연구원장·<수필처럼 한자> 저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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