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물밀물

가계 빚이 한국경제의 시한폭탄이 된 지 이미 오래다. 지난 8월 말 기준 은행권 가계대출 잔액은 1073조7000억원이다. 여기에 제2금융권을 포함하면 1616조6000억원에 달한다. 이자까지 톡톡히 챙기는 금융권이야 좋겠지만 가정경제는 위험하다. 과연 얼마나 버텨낼지도 장담하기 어렵다. 더 큰 문제는 이런 현실에서도 가계대출 증가세가 지속하고 있다는 점이다. 너도나도 빚내서 부동산 투기에 열을 올리는 게 현실이다. 정부도 사실상 권장하는 모양새다. 그러나 삐끗하면 낭떠러지다. 이러니 '하우스푸어'가 넘쳐난다는 말도 과한 얘기는 아닐 것이다. 실제로 대다수 가계의 가처분소득은 너무도 빈곤하다. 마이너스 통장 등으로 돌려막는 한계가구가 많아도 너무 많다.

가계가 이럴진대 정부인들 온전하겠는가. 올해 국세 수입이 당초 정부의 예상(400조5000억원)보다 59조1000억원 부족할 것이라는 세수 재추계 결과가 나왔다. 예상보다 세수 결손 규모가 크고 역대 최악이다. 윤석열 정부 초기부터 '비상경제'를 선언하고 재정 건전성을 역설했던 점을 고려하면 참으로 아픈 대목이다. 물론 글로벌 경기 침체에 따른 수출과 내수의 동반 부진이라는 이유를 댈 수 있겠지만, 그것과 대규모 '세수 펑크'는 차원이 다르다. 자칫 정부와 재정에 대한 신뢰를 훼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세목별 결손 규모를 보면 최근의 '민생 위기'와는 거리가 멀다는 점이다. 먼저 법인세가 25조4000억원으로 가장 많이 줄었다. 기업 실적이 좋지 않았다지만, 법인세 감세 정책도 한몫을 했다. 다음으로는 양도소득세를 포함한 소득세가 17조7000억원 덜 걷혔다. 부동산 경기가 나빴다지만 이 또한 부동산 감세 정책의 영향이 크다. 글로벌 경기가 부진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부동산 경기가 좋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정부는 감세를 밀어붙였다. 반면 근로소득세는 오히려 1000억 원이나 증가했다. '부자 감세'의 후유증을 고스란히 '유리지갑' 등 대부분의 국민이 대신 짊어지고 있는 셈이다.

60조원에 가까운 국세 수입 결손으로 재정적자 규모도 더 불어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국가채무가 늘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한국은행에서 돈을 빌려 쓰고 있다. 이른바 일시대출금이다. 정부가 '마이너스 통장'으로 돈을 빌리고 갚기를 반복하고 있다는 얘기다. 올해만 벌써 100조원 넘게 빌리고 갚았다. 한 달 이자만 평균 200억원이다. 통계 전산화가 이루어진 2010년 이후 최대 규모다. 언제까지 이런 식으로 국가재정을 운용할 수는 없는 일이다. 민생의 고통 앞에서 이념은 공허하며, 오기는 무용하다. 지출은 줄이되 세입은 늘려야 한다. 부자감세는 방향을 잘 못 잡은 역주행일 뿐임을 직시해야 한다.

▲ 박상병 시사평론가
▲ 박상병 시사평론가

/박상병 시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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