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물밀물

초가을 나들이로 남양주 봉선사에 다녀왔다. 봉선사는 역시 '큰법당'이 으뜸이다. 모든 절집에서 주요한 전각이 대웅전이나, 봉선사 '큰법당'은 불교 대중화라는 면에서 몇 세대는 앞서간 건축물에 해당한다. 무릇 대웅전은 '세상을 밝히는 영웅을 모신 전각'이므로, '큰법당'은 '큰 영웅의 이치를 가르치는 곳'으로 풀 수 있을 게다. 한글로 쓴 편액이어서 이채롭다. 서예가 운봉 금인석(1921~1992)의 글씨라 한다. 무심한 획, 기교 없는 서체가 오히려 돋보인다. 법당 마당에서 한참 올려다보았다. '큰법당'은 목조건물처럼 보이지만 실은 철근콘크리트로 지어, 정교하게 단청을 입혔다. '큰법당'은 근대등록문화재다.

법당 기둥에 써 붙이는 글귀인 주련 역시 한글이다. “온 누리 티끌 세어서 알고/ 큰 바다 물을 모두 마시고/ 허공을 재고 바람 얽어도/ 부처님 공덕 다 말 못하고” 한문 독해가 안 되는 중생을 배려하는 마음이 와 닿는다. 화엄경에 나온다는 보현보살의 게송을 한문으로 써 붙였다면 절 마당 중생 태반이 읽지 못하였을 것이다. 이 글씨는 석주 스님(1909~2004)이 썼다고 한다.

봉선사는 고려 광종 때 법인국사 탄문이 창건한 운악사가 기원이다. 경기도 명산 운악산에 세웠다 하여 운악사다. 조선 세종 때 불교를 선종과 교종으로 통합할 때 혁파되었다가 예종 때 세조의 비 정희왕후 윤씨가 1469년 세조의 능(광릉) 원찰로 중창하여 봉선사로 하였다. 절 입구에 들어설 때 600년 가까이 된 돌(당간지주)이 지금도 자리를 지키고 있다.

봉선사는 여러 차례 다시 지어졌다. 임진왜란 때도, 병자호란 때도 불탔다. 정조 임금 때는 함경도 일원 사찰을 관장하는 중심 사찰이 되었다. 하지만 한국전쟁 시기(1951년 3월)에 모든 건물이 또 한 번 잿더미가 되었다. 조선 예종 때 완성된 큰 종(봉선사대종·보물 제397호) 종각이 1959년 다시 세워졌고, 1963년에는 운하당이 지어졌다.

'큰법당'은 1970년 당시 주지이던 운허 스님(1982~1980)이 중건하였다. 운허 스님은 불자와 대중들이 부처님 가르침을 쉽게 접할 수 있게 불경번역 사업에 매진한 선각자요, 교육자다. “이 절을 처음 지어/ 기울면 바로 잡고/ 불타서 다시 지은/ 고마우신 그 공덕” 봉선사 '큰법당' 뒤 조사전에 붙은 주련의 글귀는 운허 스님이 직접 지었다. 조사전 주련은 청남 오제봉의 글씨라 한다. 경내를 한 바퀴 돌아 찻집에 앉으니 이른 가을바람이 연꽃 연못을 건너왔다.

▲양훈도 논설위원.
▲양훈도 논설위원.

/양훈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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