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9년이란 세월이 지났으니 잊힐 만도 한데 그리움만 쌓여간다.”

지난 4월 중순쯤 인천 부평구 인천가족공원 '세월호 일반인 희생자 추모관'에서 본 노란 리본 안에 담겨 있던 글이다. 평범한 단어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문장인데도 마음이 참 아렸던 기억이 난다. 몇 자 되지 않은 이들의 문장에 진심 어린 눈물이 서려 있다는 것을 쉬이 짐작할 수 있었다. 떠나보낸 가족과 친구를 향한 그리움이 차곡차곡 쌓여 그 공간을 포근하게 만들었다.

4개월 뒤인 8월 초, 미국에서 국내로 강제 송환된 고 유병언 세모그룹 회장의 차남 유혁기(50)씨를 인천공항 제2여객터미널에서 볼 수 있었다. 유 회장과 혁기씨 모두 세월호 선사인 청해진해운의 비리와 관련이 있는 인물들이다. 혁기씨는 컨설팅 비용 등 명목으로 559억원을 빼돌리거나 회사에 손실을 끼친 혐의를 받고 있다.

공항에서 취재진이 다가가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에게 할 말이 없느냐”는 질문했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억울하고 불쌍한 분들이라 생각한다. 진심으로 위로 말씀드린다”고 답했다. 담담한 표정에 그의 발언은 마치 세월호와 관련이 없는 제삼자의 말 같았다.

9년이 지난 지금 잊지 않으려고 애쓰고, 한편으로는 미안한 마음을 간직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유가족과 시민들뿐인 것 같아 어쩐지 불편해지기도 했다.

참사를 겪은 유가족들은 훗날 또 다른 참사가 벌어졌을 때 트라우마를 겪는다고 한다.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의 죽음을 계기로 사회가 달라질까 희망을 품었지만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는 걸 느껴서다. 2014년 세월호, 2022년 이태원, 2023년 오송 참사, 비극적인 참사가 계속 일어나고 있다. 미안하지 않아도 될 사람들이 미안해하지 않고, 사과해야 할 사람들이 진심으로 사과하는 날은 언제쯤 찾아올까.

/안지섭 사회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