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분위기, 물리적 요소만큼 중요
도시계획·도시재생에 철학적 숙고 필요
실재와의 '접근 불가능성'이 아우라 본질
도시 대표할 이미지 선정해 의미 부여를
눈을 감고 세계 각지의 도시로 여행을 떠날 궁리를 한다. 이미 마음은 송도를 지나 인천대교에 오르고, 인천공항고속도로를 달린다. 세계 주요 도시들이 머릿속에 하나둘 떠오른다. 미국 뉴욕 타임스퀘어, 호주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프랑스 파리 에펠탑, 영국 런던 템스강의 타워브릿지, 포르투갈 리스본의 28번 트램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게 된다.
도시는 땅 위에 세워진 건물과 각종 시설에서 사람들이 생활하고 활동해 나가며 공간에 특성을 부여하고 흥망성쇠를 반복하는 인간의 터전이다. 하지만 우리는 인구(population), 활동(activity), 토지(land), 이용시설(use facilities)이라는 도시의 물리적 구성요소만으로 한 국가의 도시를 떠올리기보다는 도시의 이미지와 풍겨지는 분위기로 도시를 규정하곤 한다. 우리 뇌리를 스치는 도시 이미지, 그 자체가 실제로 땅을 밟고 서서 경험하는 것보다 더 도시의 주요 구성요소로 역할 할 수 있는 것이다. 도시 이미지와 분위기는 물리적 구성요소 이상으로 중요한 요소이다. 도시계획과 도시재생 등에 철학적 숙고가 필요한 이유다.
1989년 동독과 서독을 나누던 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1991년 구소련의 해체는 이데올로기라는 구조의 해체를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20세기 초반부터 맹위를 떨치던 구조주의의 대변자 모더니즘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이제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가 온 것이다. 모든 것을 구조가 아닌, 시작도 끝도 없이 구성되고 해체되는 무한의 과정이 시작된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를 대표하는 프랑스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는 그의 저서 <소비의 사회>(1970)에서 '나는 소비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I shop, therefore I am.)'라고 말하며, 요즈음의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를 물리적 '기능'이 아닌 사물이 가진 '이미지', 즉 '기호가치'를 통해 스스로를 나타내는 시대라고 했다. 실재에 대한 파생실재(hyperreality)로 전환되는 작업인 시뮬라시옹(Simulation)과 실재의 인위적 대체물인 시뮬라크르(Simulacre)의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
현대 도시의 이미지는 실재 도시를 대체하며, 실재의 모습을 감추고 변질시켜 도시의 이미지가 실재 도시와 관계가 없는 독자적 수준의 도시로 거듭난 것이다. 이러한 도시들이 여행을 상상할 때 떠올린 도시 이미지이다.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세계 각지의 도시는 자신의 순수한 시뮬라크르로 독자성을 가진 새로운 기호(이미지), 파생실재다. 보드리야르에 따라 도시는 리스본의 28번 트램일 수 있고, 파리의 에펠탑이 될 수도 있게 된 시대인 것이다. 독자성을 가진 새로운 기호로 하이퍼리얼리즘(hyperrealism) 위에 전 세계의 도시들은 새롭게 탄생하고 있다. 전 세계 도시는 기능이 아닌 이미지의 소비물로 여겨지고 있기에 파생실재인 도시 이미지의 소멸은 실재 도시의 죽음과 연결된다. 유명 카페에 방문해 브랜드 로고가 없는 컵으로 테이크아웃하여 나가는 순간, 그 커피의 브랜드는 사라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렇듯 우리는 파생실재의 도시 이미지로부터 촉발된 감정의 충동에 따라 실제 도시를 방문하고자하는 욕구를 느끼기도 하며, 도시에 두 발을 딛고 서서 파생실재와 실재의 일치를 경험하고자 노력하기도 한다. 그것이 바로 여행이다. 여행은 한 도시의 이미지에서 시작된 사람들의 간접 경험을 직접 경험하며 파생실재를 넘은 인간 삶의 터전에 진정성을 부여하는 작업이다.
다른 한편, 현대 도시의 이미지 이면의 실재, 그리고 하나의 종합예술로 인식되는 도시의 구성 요소들을 속속들이 찾아보고 의미를 직접 경험하는 여행은 인간에게 또 다른 의미를 부여한다. 사진과 미디어에 복제된 이미지의 도시를 떠올리지만 원작에서만 느낄 수 있는 독자성과 바로 그곳, 원본의 세계를 직접 방문하고 경험하며 그 도시만의 특정성(specificity)을 체험하는 것이다. 리처드 시프(Richard Shiff)는 “우리는 매체를 통해 세계를 지각할 수 있고, 언제나 개인에게 특정하면서도 걷잡을 수 없이 생경한 무언가를 느낄 수 있다”라고 특정성에 대해 주장한다. 도시를 접하는 우리의 관점으로 본다면, 인간에게 있어 도시 자체는 매체인 것이고, 매체인 도시를 통해 세계를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우리 모두는 도시를 향한 여행자다. 그들이 방문하고자 하는 곳만의 진정한 숨결을 직접 느끼고자 한다. 독일의 철학자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이 '아무리 가까이 있어도 어떤 먼 것의 일회적 나타남'으로 정의한, 아우라(Aura)를 경험하고자 하는 것이다. 벤야민은 과학기술 발전에 따른 복제의 기술로 예술작품의 아우라가 위축되었고, 원본성(originality)이 중요한 각 사물의 권위가 복제로 인해 파괴되었다고 보았다. 도시를 예술작품에 비유한다면, 이미지를 통한 파생실재가 아닌, 시간과 장소에 따라 나타나는 '일회적 나타남'은 역사적인 의미, 계절과 시간의 가치를 품은 도시라는 작품만이 갖고 있는 진품으로서의 고유한 특정성인 것이다. 하지만, 도시를 여행하는 실재의 핵심적 요소 속에서도 벤야민은 아우라의 본질을 '거리감' 또는 '접근 불가능성'이라고 언급한다. 실재를 눈앞에서 보고 접하면서도 심적으로는 멀리 있다고 느끼는 바로 이것이 아우라의 본질이며, 아무리 가까이 있어도 어떤 먼 것의 일회적 나타남이다. 예를 들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를 보았다고 상상해 보자. 모나리자 그림은 두꺼운 유리벽 뒤에 전시되어 있고, 수많은 인파가 몰려들어 사진을 찍는다. 모나리자는 눈앞에 놓여 있지만, 심적으로는 멀리 있다고 느끼게 되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벤야민이 말하는 아우라인 것이고 우리가 도시의 실재를 접함에 있어 늘 고려해야 하는 진실, 이미지와 아우라의 괴리이다.
강조하고 싶은 바는 도시의 '이미지'와 '실재'에 대해 도시를 만들고 운영하는 우리들이 인천이라는 도시를 어떻게 세계적인 도시로 알릴 것인지에 대한 철학적 사유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실재를 추구하고자 하면서도 이미지의 환상에 사로잡혀 기대했던 실재의 아우라를 접하지 못하는 인간의 모습, 그 부조리를 해소해야 하는 것이 도시 인천을 만들고 계획하는 사람들의 몫이다. 인천이라는 도시를 대표할 이미지를 기계적으로 선정해 세계에 알리고, 여행자들에게 '일회적 나타남'의 감동을 줄 수 있는 아우라마저도 우리는 도시를 계획할 때 의도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도시는 생물이다. 인간은 도시를 만들고 그 도시는 자신을 만들고,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닮는다. '개체발생은 계통발생을 반복한다'는 주장을 했던 독일의 생물학자 헤켈(Ernst H. Haeckel)은 생물의 장구한 세월의 변화는 생물의 배(胚) 발생 과정에서 대략적 추정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이를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가 개인의 확장된 형태라는 것을 늘 유념해야 한다. 즉, 도시의 이미지는 도시에 살고 있는 우리 각자의 이미지이며, 도시의 아우라는 우리의 아우라인 것이다. 도시 인천은 현무암처럼 구멍이 송송 뚫린 다공적(多孔的) 공간으로 물질적 요소에서부터 정신적 요소가 침투할 구멍이 늘 존재하는 세계다. 수많은 구멍에 수많은 것들이 교차하며 퇴적되고 엮이는 것과 같이 '도시의 이미지'와 '실재의 아우라'는 인간의 관념 속에서 끊임없는 연결을 통해 무수한 별자리의 순환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궁극적인 도시의 모습은 없다. 우리는 인천이 '별빛'과 같이 진리에 가까운 도시로 거듭나도록 인천의 '실재'가 보유한 '아우라'로부터 '이미지'를 창출하길 바란다. 인천이 전 세계인이 바라볼 수 있는 성좌(星座)가 되어야 한다. 세계 유명도시가 그러하듯 '실재와 이미지의 반복'을 끊임없이 순환시켜야 하는 의식과 함께 우리의 도시 인천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봐야 한다.
/오수진 인천도시공사 나눔홍보부장
/공동기획=인천일보·인천학회·인천도시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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