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두 얼굴의 스파이'

베트남 육군대위-베트공 정보원 역할
1975년 전쟁 당시 정체성 혼란 묘사
박찬욱 감독, 동명 미드 제작…방영 예정
당신을 위한 책 한 권
▲ 동조자 비엣 타인 응우엔 지음 김희용 옮김 민음사 680쪽·1만8000원

“나는 스파이, 고정간첩, CIA 비밀 요원, 두 얼굴의 남자입니다.”

이처럼 명쾌한 시작이 있을까. 이 한 문장으로 700여쪽에 달하는 이 책의 모든 걸 설명할 수 있다.

<동조자>는 주인공 '나'와 주변 인물이 뱉어내는 무수히 날선(혹은 설익은) 대사와 비아냥이 섞인 말투가 엉키고 설켜 있다. 저자 비엣 타인 응우옌은 미국인이다. 아니 '베트남계 미국인'이다.

책은 남베트남의 수도 사이공이 함락되는 막바지 베트남 전쟁(이 책에 따르면 베트남에서는 이를 미국 전쟁이라 부른다.) 때인 1975년 4월로 시작한다. 괌으로의 탈출기는 드라마틱하지만 우스꽝스럽고, 괌에 임시로 세워진 난민촌에서의 비극은 촌극처럼 보인다. 그리고 미국 본토에 정착하게 된 나와 주변인의 정체성에 혼란을 겪는 이야기들로 꾸며진다. 여기에 '나'가 참여한 베트남 전쟁 영화는 그동안 미국 시각으로의 베트남 전쟁에 익숙해졌음을 돌아보게 한다.

'나'는 '장군' 앞에서는 특수부 소속 육군 대위이다. 그리고 '클로드'에 발탁된 CIA 정보요원이다. 그리고 친구 '만'과 함께 북베트남 정보원이 됐다. '나'는 프랑스와 베트남의 피가 섞였다. 베트남에서는 '이방인'이고, 프랑스에서도 낯선자이다.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나'는 그렇게 이율배반적인 책 <동조자>를 이끌어간다.

1975년 4월은 '나'에게 큰 의미가 있다. 남베트남 육군 대위로서는 '패망'이지만, 북베트남 정보원으로서는 '해방'이다. 그래서 <동조자>에 대해 “이 소설은 아무도 역사의 '올바른 편'에 서 있지 않은 복잡한 세계를 펼쳐 보인다”고 평한다.

'나'는 세 가지의 얼굴, 늘 정체성에 혼란을 겪으며 “거짓이라기보다는 가장 좋은 유형의 진실. 그러니까 적어도 두 가지 의미를 지닌 진실이었습니다”라는 거짓 속의 진실을 놓치지 않으려 애쓴다.

6·25는 휴전상태다. 올해는 정전 70년이다. 6·25는 진행형이다. 이념 대립의 한 축이었던 베트남 전쟁은 북이 승리했다. 그렇기에 끝나지 않는 6·25 전쟁 앞에 마주 선 우린 베트남 전쟁을 통해 '반전'을 되새기게 되고, 나라의 소중함을 깨우친다.

전쟁은 지옥이다(War is hell). 이 문장은 반전의 메시지가 아니다. 미국 남북전쟁에서 북쪽 장군이 남쪽 사람들에게 내리는 저주이다. 여전히 전쟁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권력을 놓지 못하는 장군과 주변인. 그리고 미국이란 자본주의 속에 푹 빠졌지만 '물과 기름'처럼 결코 섞일 수 없어 언제나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베트남 난민들의 속사정이 책에 묻어 있다.

이 책은 박찬욱 감독이 극본을 쓰고 연출을 맡아 내년에 방영될 동명의 미국 드라마로 더욱 알려졌다.

/이주영 기자 leejy96@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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