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21일 수원의 한 아파트에서 영아 시신을 냉장고에 몇 년째 보관 중인 사실이 밝혀졌다. 친모는 생활고 때문에 2018년과 2019년 자신이 낳은 아이 둘을 살해해 냉동실에 넣어두었다고 진술했다. 이 엽기적인 사건에 온 사회가 분노했다. 검찰은 친모를 영아살해죄로 구속한 뒤 살인죄로 송치했고, 국회는 몇 년이나 끌던 '출생통보제' 관련 법률을 부랴부랴 통과시켰다. 수원만이 아니라 여기저기서 유사한 영아살해 의혹도 제기됐다.
감사원이 밝힌 바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22년 사이 병원 출생기록은 있으나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아기가 2236명에 이른다. 경기도 통계를 종합한 결과 2009년부터 2022년 사이 미신고 출생아동이 무려 8495이었다 한다. (인천일보 7월6일자) 이런저런 이유로 통계에 잡히지 않은 내국인 아기와 불법체류 외국인 아기까지 더하면 얼마나 더 늘어날지 알 수 없다. 이들 아기의 생사와 안부가 몹시 궁금하다.
30년 전쯤 미국 문화인류학자 마빈 해리스(Marvin Harris)가 쓴 <문화의 수수께끼>라는 책을 탐독한 적이 있다. 내용 가운데 '체계적 유아살해' 실태와 해석이 실려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여러 원시부족을 관찰해 보면, 인구압력이 높아지는 시기에 어른(주로 친모)에 의한 '체계적 영유아 살해'가 발생한다. 아기를 다 먹여 살리기 어려울 정도로 인구가 많아지면, 주로 잠을 자다가 아기를 질식사시키는 방법이 쓰인다. 살해되는 아기는 대개 여아다. 남아는 전투를 수행할 전사로 길러져야 하므로 살려둔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경악했던 대목은 살해자들이 별다른 죄책감을 갖지 않는다는 대목이었다. 오늘날 윤리 감각으로는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현상이다. 하지만 마빈 해리스는 문화유물론자답게 자신의 이론을 밀고 나간다. 그런데 21세기 한국에서 지난 15년간 최소 1만 명의 영아가 기록도 없이 태어났다가 사라졌다. 하루 두 명 꼴이다. 마빈 해리스라면 변형된 '체계적 영아살해'라고 진단하지 않을까. 미혼모나 비혼모 등 사회적 이목 때문에 혹은 경제적 궁핍이 두려워서 낳은 아기를….
“패륜 부모들”에게 침을 뱉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출생통보제 하나 달랑 도입하고 마는 것은 무책임하다. 익명출산, 비밀출산이 가능하도록 제도를 보완하는 일을 계속 논의해나가야 한다. 나아가 일단 태어난 모든 아기는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국가와 사회의 지원을 대폭 강화하는 일이 급하다.
/양훈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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