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에게 휴전선 길이를 물어보면 대체로 155마일(248㎞)이라고 답한다. 하지만 실측 길이는 약 241㎞다. 어째서 7㎞나 오차가 난 걸까. 1952년 당시 변영태 외무장관이 유엔 기자회견에서 “휴전선 155마일에 걸쳐 유엔군이 공산군과 맞서고 있다”고 언급했고, 이게 그냥 굳어졌다. 정전협정이 성립되기 전에는 '248㎞ 플러스마이너스 알파'에 걸쳐 전선이 형성되어 밀고 밀렸으므로, 변 장관이 틀린 게 아니다. 이후 70년간 별 확인 없이 155마일 운운해온 게 부끄러울 따름이다. 군가 가사처럼 '휴전선 600리'라 했으면 정확했을 텐데 굳이 '마일'로 멋을 부리다 그리된 건 아닌지 모르겠다.
휴전협상은 1951년 7월에 시작되었다. 7월8일에 예비회담이 열렸고, 7월10일에 첫 본회담이 진행됐다. 장소는 개성시 내봉장이라는 여관. 휴전협상을 앞두고 양측은 기싸움을 벌였다. 공산군 측은 전쟁 전의 상태로 돌아가자는 휴전 조건을 내세웠다. 즉 전쟁 발발 전인 북위 38도선을 기준으로 군사를 물리고, 전투를 일단 중지하자는 것이다. 반면 유엔군 측은 '실제 대치선'을 휴전의 기준으로 삼자고 했다. 공산군 측은 곧 38선을 포기하고 '대치선'을 받아들였다. 회담 장소도 개성에서 판문점으로 변경되었다.
이후 양측은 말 그대로 한 뼘이라도 더 땅을 차지하기 위해 2년간 현재의 휴전선 근처에서 피비린내 나는 공방을 벌였다. 가장 안타까운 사실은 왜 협정 조인 '12시간 후 효력 발생'이라는 조항을 넣었을까 하는 점이다. 1953년 7월27일 오전 10시 협정 서명 순간 휴전이 성립되었더라면 이후 12시간 사이 죽지 않았을 양측 군인이 마지막 전투를 목숨 바쳐 치러야 했다. 당시 병사들 심정은 영화 '고지전'에 잘 그려져 있다. 다시는 되풀이되지 말아야 할 '전쟁의 광기'다.
70년 휴전상태에 이젠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대한민국은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4년 8월 광복절 이래 29년째 '민족공동체 통일 방안'을 국가 공식 통일 정책의 기조로 삼아왔다. 이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자주, 평화, 민주”라는 기본 원칙에 따라 “화해협력→남북연합→통일 헌법에 따라 남북 자유총선거 실시, 민족통일·국가통일 동시달성”을 추구해야 한다. 화해협력의 방식을 두고 이견이 있을 수는 있으나, 휴전상태를 종전상태로 바꾸려는 노력이 도매금으로 매도돼서는 곤란하다. '민족공동체 통일 방안'을 폐기하고 싶은 거라면, 왜 그래야 하는지 설명하고 국민의 의사를 수렴하는 절차를 먼저 진행해야 한다.
/양훈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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