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자료화면./사진=연합뉴스

24일(현지시간) 미 뉴욕타임스(NYT), CNN 방송 등 외신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23년간 그가 러시아를 통치한 이래 가장 심각한 위협에 직면했다.

무장 반란을 일으킨 러시아 용병기업 바그너 그룹이 모스크바를 코앞에 둔 상황에서 진격을 멈추고 철수하기로 하고, 러시아는 그가 벨라루스를 떠나는 조건으로 그와 병사들을 처벌하지 않기로 합의함에 따라 최악의 상황은 피했지만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번 일로 정치적 리더십에 엄청난 타격을 입게 됐다.

자신이 믿고 쓴 바그너 그룹으로부터 등에 칼을 맞은 데다 상황 수습도 결국 자신이 아닌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의 손에 맡긴 셈이 돼 이래저래 체면을 구기게 됐다.

지난 몇 달간 바그너 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러시아 군 수뇌부를 공개 비판할 때 푸틴 대통령은 입을 다물고 침묵한 바 있다.

이를 두고 '전술의 달인'인 푸틴 대통령이 충성스러운 부하를 내세워 군 수뇌부를 견제하려는 '큰 그림'을 그린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바그너 그룹이 러시아 남부의 주요 군사 거점인 로스토프나도누 군 사령부를 장악하고, 모스크바 200㎞ 앞까지 진격, 푸틴의 크렘린궁을 직접 위협하면서 이런 해석은 민망해졌다.

게다가 푸틴 대통령이 바그너 그룹의 무장 반란 직후 직접 TV 연설에 나서 프리고진의 반란은 "반역"이라며 강경 대응에 나설 뜻을 밝혀 상황은 더 간명해졌다.

잠재적 라이벌을 견제하기 위해 엘리트 간 갈등을 묵인, 심지어 조장하면서 최종 권한은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강조해 온 그의 통치 방식이 더는 통하지 않게 됐다.

▲ 바그너 그룹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사진=바그너 그룹 텔레그램 캡처, 연합뉴스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본격 감지된 건 지난 23일 프리고진이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부 장관을 공개 비난했을 때부터다.

프리고진은 "바그너 그룹의 야전 캠프에 미사일 공격을 지시한 쇼이구 장관을 응징하기 위해 움직일 것"이며 "이는 쿠데타가 아니라 '정의의 행진'"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앞서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군의 반격에 밀려 후퇴 중이라고 밝히며, 러시아군이 이기고 있다는 푸틴 대통령의 발언을 직접 반박하기도 했다.

러시아 당국은 프리고진의 발언이 선을 넘었다고 보고, 무장 반란 혐의에 관한 수사 계획을 발표하는 한편 체포 명령을 내렸다.

이에 반발한 바그너 그룹은 우크라이나에서 국경을 넘어 러시아로 진격했고 러시아 남부 로스토프주의 국경 검문소를 순식간에 통과했다.

프리고진은 텔레그램을 통해 이따금 교전이 벌어지고 있고 러시아 정규군 헬리콥터를 격추했다고 알리기도 했다.

이어 24일 오전 7시 30분 로스토프주의 주도 로스토프나도누의 군 사령부를 접수, 비행장 등 모든 군사기지를 통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러시아는 이에 맞서 모스크바와 보로네시에 대테러 작전체제를 발령했고, 거리에 장갑차가 등장했다.

푸틴 역시 오전 10시 긴급 TV 대국민 연설을 통해 "우리는 등에 칼이 꽂히는 상황을 목격하고 있다. 반역에 직면했다"며 가혹한 대응이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프리고진은 푸틴 대통령의 경고에도 "아무도 투항하지 않을 것"이라며 진격을 이어갔다.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극적인 소식은 벨라루스 대통령실에서 전해졌다.

바그너 그룹이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과 협상해 러시아에서의 병력 이동을 중단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외신들은 이번 바그너 그룹의 무장 반란이 진압됐다 하더라도 그 여파가 당분간 지속해 러시아 내 정치적 불안정을 조장하고 푸틴 대통령의 지도력에 물음표를 제기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무리하게 우크라이나 전쟁을 시작해 인적·물적 피해와 내부 분열만 키웠다는 비판에 맞닥뜨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1991년 여름 국가보안위원회(KGB) 강경파의 쿠데타 시도가 몇 달 뒤 소련의 붕괴를 앞당겼다는 점을 거론하며 "역사가 반복된다고 말하기엔 너무 이르지만,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로 한 푸틴의 결정은 가장 큰 전략적 실수이자 조만간 그를 권좌에서 끌어내릴 수 있는 중대한 실수임이 입증됐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미국 CNN 방송도 이번 일로 러시아 엘리트층 내에서 푸틴의 권력 장악력을 의심할 수밖에 없게 됐다고 지적했다.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 역시 "러시아는 무너져가는 전선을 지키기 위해 수십만 명의 병력을 동원해야 했고, 이로 인해 대규모 이민이 발생했다"며 "러시아 내륙 깊숙이 푸틴이 공들여 쌓아온 강인한 이미지에 구멍이 뚫렸다"고 분석했다.

/노유진 기자 yes_ujin@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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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데타' 단어 금지→현장 사진 쓰지 마" 안간힘 쓰는 푸틴 영국 일간 더타임스 등 외신에 따르면 27일(현지시간) 러시아 당국은 용병기업 바그너 그룹의 무장 반란 사태 이후 동요하는 민심을 진정시키기 위해 자국 방송 언론에 '쿠데타'라는 단어를 쓰지 못하게 하는 등 안간힘을 쓰고 있다.한 러시아 방송 채널의 모스크바 스튜디오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 26일 크렘린궁은 '쿠데타'와 '폭동' 등 단어 대신 '반란 시도'를 사용하라는 지침을 내렸다.또 반란을 주도한 바그너 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과 용병들에 대한 비판을 피하고, 전투로 '의문의 추락사'로 사라진 프리고진…쏟아지는 음모론 지난 6월 푸틴을 상대로 무장반란 사태를 일으킨 러시아 용병기업 바그너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2개월 만에 비행기 추락 사고로 갑작스럽게 숨졌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온라인에서 각종 음모론이 확산하고 있다.23일(현지시간)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프리고진은 죽은 것처럼 위장했을 뿐 실제로는 살아있다" "프리고진의 죽음은 미국 책임이다"라는 등의 확인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또 "모스크바에서 두 대의 비행기가 짧은 시차를 두고 이륙했는데 사실 프리고진은 추락하지 않은 두 번째 비행기에 타고 있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