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문일 논설위원.
▲ 이문일 논설위원.

“찢기는 가슴 안고 사라졌던 이 땅의 피울음 있다/부둥킨 두 팔에 솟아나는 하얀 옷의 핏줄기 있다/해 뜨는 동해에서 해 지는 서해까지/뜨거운 남도에서 광활한 만주벌판/우리 어찌 가난하리오 우리 어찌 주저하리오/다시 서는 저 들판에서 움겨쥔 뜨거운 흙이여”

민중가요로 잘 알려진 '광야에서'(문대현 작사·작곡)란 곡이다. 1980년대 당시 학생운동권에서 즐겨 불렀다. 이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에게도 큰 인기를 누린 이 노래를 듣고 부르며 늘 뭔가 가슴이 벅찼던 추억이 새롭다.

여기에 나오는 '해 지는 서해'의 중심 대도시는 어디일까. 단연 '인천'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싶다. 바다를 끼고 있는 인천이 낙조의 명소임은 분명한 사실이다. 인천에서 일몰을 감상하기에 좋은 데는 수두룩하다. 가끔은 복잡한 도시 생활에 찌든 때를 씻을 '감성여행'도 필요하지 않은가.

그 가운데서도 국토 정서쪽에 있어 '정서진'으로 불리는 서구가 압권이다. 경인아라뱃길 인천터미널에 위치한 이 곳엔 영종도 주변 섬 사이로 떨어지는 노을이 잘 조망돼 일몰 명소로 자리를 잡았다. 조형물 '노을종' 속으로 해넘이를 보며 느끼는 운치는 그만이다. 해마다 12월31일엔 '정서진 해넘이 축제'가 열린다.

중구 용유도 바닷가도 서해 낙조 여행의 백미로 꼽힌다. 서울 도심에서도 공항철도를 타고 1시간 남짓 걸려 닿을 수 있다. 해돋이와 해넘이를 함께 볼 수 있는 한적한 거잠포, 바다 속으로 떨어지는 해가 유난히 붉은 마시안해변과 선녀바위, 젊음이 넘쳐나는 을왕리해변, 낙조가 뛰어나 용유8경의 제1경으로 꼽히는 왕산해변 등 어디를 가더라도 낭만이 흐르는 노을을 만끽할 수 있다. 이밖에 인천에선 마음만 먹으면 지는 해를 바라보며 인생을 돌이켜 볼 수 있는 곳이 정말 많다.

인천시와 인천관광공사가 서해를 품은 인천에서 아름다운 낙조를 감상할 송도∼영종 노을야경 여행을 시작했다. 오는 9월 말까지 매주 금·토요일 2층 버스에서 인천대교의 붉은 노을과 송도국제도시의 야경을 누릴 수 있는 '인천 노을야경 투어'다.

송도국제도시 인천종합관광안내소 앞에서 출발하는 이 여행은 송도센트럴파크에서 인천대교를 거쳐 영종도로 이어지는 코스. 인천 앞바다의 낙조와 밤하늘을 즐길 수 있다. 화려한 송도국제도시의 야경은 이국적 풍경을 선사한다는 입소문을 타고 진화하는 중이다.

언제라도 저녁노을이 보고 싶을 때면 달려갈 수 있는 인천에서 더 많은 '낙조상품'이 개발되길 바란다. 그래서 인천을 관광하는 이들에게 색다른 재미를 느끼게 했으면 한다. 고즈넉하게 인생을 회상하며 노을을 감상할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지 않은가.

/이문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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