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문일 논설위원.
▲ 이문일 논설위원.

성균관대 박물관이 지난해 5월 검여 유희강(劍如 柳熙綱·1911∼1976) 특별 전시회를 열어 화제를 모았다. 검무(劍舞)란 주제였는데, 유족들이 기증한 작품들을 전시했다. 유족들은 성균관대에 작품 400점과 습작 600점 등 1000점과 생전에 사용했던 벼루와 붓 등을 아무런 조건 없이 기증했다. 추사 김정희 이후 최고의 명필로 평가를 받는 검여의 최다·최대·최고 '컬렉션'이기에 그 기증은 의미를 더했다.

검여는 인천이 낳은 불세출의 서예가로, 서구 시천동 출신이다. 인천시립박물관 관장을 비롯해 인천시립도서관 관장과 한국서예가협회 회장 등을 지냈다. 유희강은 일제 강점기인 1937년 명륜전문학교(성균관대 전신)를 졸업하고, 중국으로 건너가 1946년까지 머물며 서화·금석학·양화 등을 고루 섭렵했다. 유연하면서도 날카로운 '검의 춤사위'를 닮은 최고 수준의 서풍을 창출했다고 잘 알려져 있다.

이런 유희강의 작품을 소중히 여긴 유족들은 2019년 인천시에 검여의 유품과 벼루·붓 등을 기증하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미적지근한 시의 반응으로 무산됐다. 그러자 안목 없는 시의 문화행정이 도마 위에 올랐다. 당대 서예 거장의 유품을 기증하겠다고 해도, 이를 수용할 전시관을 찾지 못해 결국 서울로 넘어간 사실에 지역 문화예술계는 충격에 빠졌다. 검여가 남긴 작품만 모아도 미술관을 만들고도 남는 데도 그러지 못한 일에 애석해 했다.

검여는 '검여서숙(劍如書塾)'을 열어 후배들을 지도해 오던 중 1968년 고혈압으로 쓰러져 실어증과 반신불수에 시달렸다. 하지만 병고조차 그의 예술혼은 꺾지 못했다. 추사를 흠모했던 검여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을 실현하기 위해 계속 서도에 정진했다. 그는 오른손 마비 상태에서 왼손으로 쓴 글씨로 1971년 제3회 개인전을 열어 큰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랬던 유희강이 다시 인천으로 되돌아온다는 소식이다. 이로써 인천시의 검여 유품 거부 사태 논란은 4년 만에 수습되는 모양새를 갖췄다. 인천시립박물관과 성균관대박물관은 지난 2일 검여 유물 교류와 공동연구를 위한 업무협약을 맺었다. 시립박물관은 그동안 검여 유품에 대한 상시 전시를 하려고 성균관대박물관과 협의에 나서 성과를 거뒀다. 시립박물관은 3층 고미술실에 '검여 진열장'을 세우고, 검여 작품과 인장 등의 유품을 상설 전시할 예정이다.

아호에서 보이듯 '칼처럼 날카롭고, 돌처럼 단단하면서도, 박처럼 둥근' 글씨를 쓰고 싶어 했던 검여. 작품 특징이자 삶의 자세이기도 한 그의 유품을 늘 감상할 수 있는 전시관을 마련했으면 좋겠다. 인천시가 보석과 같은 한국 서예사의 존재를 알아줬으면 한다.

/이문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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