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기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 이기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대한민국은 만성적인 정치병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1988년에 선거법을 개정하여 국회의원 선거에 소선거구제를 도입하였다. 구정치인을 물갈이한다는 개혁적인 의미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소선거구제는 승자독식의 극단적인 정치 양극화를 초래하였다. 대화와 협상에 의한 정치는 실종된 지 오래다. 진영논리에 빠진 사생결단의 싸움판 정치가 국민을 분열시키고 있다. 민생문제와 국가현안은 뒷전이다.

소선거구제의 폐단을 시정하기 위한 시도가 여러 차례 있었다. 1991년에 노태우 대통령이, 2000년 김대중 대통령이 중대선거구로 개편을 제안한 이후에 역대 정부에서 지속해서 논의되었다. 지난 정부에서 소선거구에 연동한 비례대표제를 도입하였으나 위성정당을 통해서 도입취지는 망각되고 정치는 황폐화되었다. 1994년에 통합선거법이 제정된 이후에 선거법이 96번이나 개정되었으나 기득권의 장벽에 막혀 모두 임시미봉적인 조치에 그쳤다.

우리나라의 정치병을 치유하기 위한 소선거구제의 개편은 시대적인 요구가 되었다. 연초에 대통령이 중대선거구제로 선거제도를 개선할 것을 제안하였고 국회의장이 선거법을 개정하겠다고 화답하였다. 140명이 넘는 국회의원들이 초당적 모임을 만들어 선거제도 개혁을 선언하였다. 국회의 정치개혁특위도 선거법개정을 논의 중이다.

선거제를 개편하는 데는 다음 몇 가지 전제조건이 지켜져야 한다. 첫째, 소선거구제는 어떤 식으로든지 개편되어야 한다. 이를 개편하는 방안은 중대선거구제의 도입이다. 중대선거구제에는 한 지역구에서 다수대표로 다수의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방법과 전국선거구 또는 권역별 선거구에서 비례대표로 선출하는 방법이 있다. 양자는 모두 대표성과 비례성을 높이는 효과가 있고, 정치 양극화를 완화하는 효과가 있다. 둘째, 비례대표제를 폐지하고, 국회의원 전원을 지역구 선거로만 선출하는 것은 헌법상 허용되지 않는다고 보는 헌법학자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셋째, 지역구 선거를 폐지하고 국회의원 전원을 비례대표로만 뽑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비례대표는 정당선거인데 정당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매우 낮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대선거구 비례대표제와 중대선거구 다수대표제를 병행하는 혼합선거제도가 바람직하다.

중대선거구 대수대표제에 의한 지역구 선거는 한 선거구에서 최소한 3명 이상 선출하되 가능한 5명 이상 선출하는 방식이 바람직하다. 유권자가 한 명의 후보에게만 투표하는 단기명제보다는 선출하는 대표자 수만큼 투표할 수 있는 연기명제를 도입하는 것이 대표성과 비례성을 높이고 정치 양극화를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

중대선거구 다수대표제를 전국적으로 도입하는 것이 어려운 경우에는 정치권에서 검토되고 있는 도농복합형의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하는 것도 차선책으로 고려할만하다. 대도시에 먼저 중대선거구 다수대표제를 도입하고, 농촌의 경우는 1인 선거구 즉, 소선거구제를 잠정적으로 유지하는 방안이다. 기득권 장벽을 완화하고, 농촌과 대도시 간의 차이를 반영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 경우 지역구를 중대선거구로 하는 대도시는 일종의 정치특구로 볼 수 있다.

세계 어디에도 완벽한 선거제도는 없다. 중요한 것은 현역의원들이 당리당략과 기득권을 내려놓고 열린 자세와 상호양보의 협상으로 최대공약수를 수렴하여 선거법을 개정하는 것이다. 직접적인 이해당사자인 국회의원에게만 선거법 개편을 맡겨두면 또 실패할 것이다. 유권자들의 강력한 압력이 있어야 한다. 선거제도 개편의 성과를 내년 4월 총선에서 투표로 평가하겠다고 유권자들이 나서야 한다.

/이기우 인하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관련기사
[시론] 자치없는 자치경찰 개편돼야 자치경찰제는 비대한 경찰권력을 국가와 지방간에 수직적으로 분권화하고 주민의 체감치안을 제고하는데 목적이 있다. 시·도지사 소속으로 자치경찰위원회를 설치하여 자치경찰을 실시한 지 1년이 지났다. 하지만 대부분의 주민들은 자치경찰의 도입으로 무엇이 달라졌는지를 체감하지 못한다.검찰청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검찰이 가지고 있던 수사권의 대부분이 경찰로 이관되었다. 국가경찰이 지나치게 비대해졌다. 생활안전과 교통, 경비 사무와 학교폭력과 가정폭력, 교통사범 등에 대한 수사권을 자치사무로 이관했지만, 실제 집행은 여전히 국가경찰이 한다. 더구 [시 론] 정치가 운명이다 정치의 계절이다. 대통령선거가 60여 일 남았다. 제왕적 대통령제하에서 모든 정치권력은 대통령에게 집중되어 있다. 한판의 대통령선거에 나라와 국민의 운명이 걸려있다.유럽을 정복한 나폴레옹 황제는 범유럽제후회의가 열린 독일의 에르푸르트에서 1808년 10월2일 세계적인 문호 괴테를 아침 식사에 초대하였다. 황제는 그의 <베르테르의 슬픔>을 7번이나 탐독하였다고 한다. 작품을 비평하면서 “지금도 운명에 매달리는가? 정치가 운명이다”라고 말했다. 정치가 운명이라는 그의 말은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지하는 사람도 있고 비판하는 사 [시론] 관변단체로 전락한 주민자치회 1999년 주민자치위원회가 도입되었으나 제대로 작동되지 못하였다. 이에 행정안전부는 2013년부터 주민자치회를 구상해서 8년간이나 막대한 예산을 들여 시범실시를 하고 있다. 가시적인 성과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일부 국회의원들이 주민자치회를 법제화하려고 한다. 이에 주민자치회의 본질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주민자치회는 일본의 정내회(町內會)나 미국의 근린협회(Neighborhood Association)와 비교된다. 이들은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비영리민간단체로서 우리 주민자치회와는 매우 다르다. 이러한 민간 [시론] 선거법이 정치를 망치고 있다 대통령선거를 위한 경선이 개막되면서 모든 중앙과 지방의 현안이 블랙홀처럼 빨려들고 있다. 정치의 계절이다. 대선에 못지않게 중요한 지방선거가 9개월 앞으로 다가왔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적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다. 주민의 일상적인 생활을 좌우하는 것은 멀리 떨어져 있는 중앙정치가 아니라 생활문제를 직접 결정하고 집행하는 지방정치이다. 지방정치가 주민의 뜻에서 벗어난다면 주민의 삶의 질은 그만큼 떨어진다. 정당에 대한 지지도와 정당의석 간에 묵과할 수 없는 격차가 나타나고 있어 지방정치가 심하게 왜곡되고 있다.예컨대, 2018년 실시된 [시론] 강제징용 피해 보상과 오에 겐자부로를 애도하며 오에 겐자부로가 죽었다. 늦었지만 부음에 왈칵 가슴이 저민다. 일본의 장례문화는 독특한 것이 있다. 망자의 죽음을 곧바로 알리지 않는다. 슬픔의 정화에 깊은 애도가 있다.오에 겐자부로가 누구인가? 야스쿠니 신사참배와 일본 방위군 재무장을 위한 평화헌법을 반대한 일급 반핵·평화주의자이자 소설가다. 군국주의 폐허에서 일본 사회의 우경화를 비판하고 행동하는 일본의 양심과 지성을 대표했다. 그는 “중국 한국 기타 아시아 이웃 국가에 진심으로 사죄하고 전쟁 배상금을 지불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문득 윤 대통령의 '일제 강제징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