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만성적인 정치병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1988년에 선거법을 개정하여 국회의원 선거에 소선거구제를 도입하였다. 구정치인을 물갈이한다는 개혁적인 의미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소선거구제는 승자독식의 극단적인 정치 양극화를 초래하였다. 대화와 협상에 의한 정치는 실종된 지 오래다. 진영논리에 빠진 사생결단의 싸움판 정치가 국민을 분열시키고 있다. 민생문제와 국가현안은 뒷전이다.
소선거구제의 폐단을 시정하기 위한 시도가 여러 차례 있었다. 1991년에 노태우 대통령이, 2000년 김대중 대통령이 중대선거구로 개편을 제안한 이후에 역대 정부에서 지속해서 논의되었다. 지난 정부에서 소선거구에 연동한 비례대표제를 도입하였으나 위성정당을 통해서 도입취지는 망각되고 정치는 황폐화되었다. 1994년에 통합선거법이 제정된 이후에 선거법이 96번이나 개정되었으나 기득권의 장벽에 막혀 모두 임시미봉적인 조치에 그쳤다.
우리나라의 정치병을 치유하기 위한 소선거구제의 개편은 시대적인 요구가 되었다. 연초에 대통령이 중대선거구제로 선거제도를 개선할 것을 제안하였고 국회의장이 선거법을 개정하겠다고 화답하였다. 140명이 넘는 국회의원들이 초당적 모임을 만들어 선거제도 개혁을 선언하였다. 국회의 정치개혁특위도 선거법개정을 논의 중이다.
선거제를 개편하는 데는 다음 몇 가지 전제조건이 지켜져야 한다. 첫째, 소선거구제는 어떤 식으로든지 개편되어야 한다. 이를 개편하는 방안은 중대선거구제의 도입이다. 중대선거구제에는 한 지역구에서 다수대표로 다수의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방법과 전국선거구 또는 권역별 선거구에서 비례대표로 선출하는 방법이 있다. 양자는 모두 대표성과 비례성을 높이는 효과가 있고, 정치 양극화를 완화하는 효과가 있다. 둘째, 비례대표제를 폐지하고, 국회의원 전원을 지역구 선거로만 선출하는 것은 헌법상 허용되지 않는다고 보는 헌법학자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셋째, 지역구 선거를 폐지하고 국회의원 전원을 비례대표로만 뽑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비례대표는 정당선거인데 정당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매우 낮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대선거구 비례대표제와 중대선거구 다수대표제를 병행하는 혼합선거제도가 바람직하다.
중대선거구 대수대표제에 의한 지역구 선거는 한 선거구에서 최소한 3명 이상 선출하되 가능한 5명 이상 선출하는 방식이 바람직하다. 유권자가 한 명의 후보에게만 투표하는 단기명제보다는 선출하는 대표자 수만큼 투표할 수 있는 연기명제를 도입하는 것이 대표성과 비례성을 높이고 정치 양극화를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
중대선거구 다수대표제를 전국적으로 도입하는 것이 어려운 경우에는 정치권에서 검토되고 있는 도농복합형의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하는 것도 차선책으로 고려할만하다. 대도시에 먼저 중대선거구 다수대표제를 도입하고, 농촌의 경우는 1인 선거구 즉, 소선거구제를 잠정적으로 유지하는 방안이다. 기득권 장벽을 완화하고, 농촌과 대도시 간의 차이를 반영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 경우 지역구를 중대선거구로 하는 대도시는 일종의 정치특구로 볼 수 있다.
세계 어디에도 완벽한 선거제도는 없다. 중요한 것은 현역의원들이 당리당략과 기득권을 내려놓고 열린 자세와 상호양보의 협상으로 최대공약수를 수렴하여 선거법을 개정하는 것이다. 직접적인 이해당사자인 국회의원에게만 선거법 개편을 맡겨두면 또 실패할 것이다. 유권자들의 강력한 압력이 있어야 한다. 선거제도 개편의 성과를 내년 4월 총선에서 투표로 평가하겠다고 유권자들이 나서야 한다.
/이기우 인하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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