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개교 50년이란 세월은 유구한 것이며 학교의 역사로서는 귀중한 것입니다. 대한제국 시대에 탄생하여 일제 지배하에서 고난의 성장을 하고 대한민국의 우수한 국민학교로서 전국적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창영국민학교는 50년의 역사와 더불어 한국 교육계의 자랑이 아닐 수 없습니다.”
▶“3형제의 자식 관계로 1948년부터 창영학교의 학부형이란 영예를 지니고 있어서 창영학교를 칭찬함은 자화자찬하는 것 같지만 광복 직후 취임하신 조석기 교장을 중심으로 아동 훈육과 교육 연구에 다대한 공헌을 한 교직원들의 노력을 찬양드립니다. 재학생들과 교직원 여러분들과 함께 50주년의 기쁨을 함께하면서 앞으로 더 한층 노력하여 창영 국민학교의 빛나는 역사를 창조해 나가기를 기원드립니다.” 선친 한옹(汗翁) 신태범(愼兌範) 박사께서 1957년 개교기념일에 쓰신 축사를 간추린 것이다.
▶한옹 선생께서 창영학교 교지에 기고한 '학교를 사랑합시다'라는 글도 인상적이다. “학교를 사랑한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과 같고 자기를 위해서 곧고 씩씩한 어린이가 되면 이것이 학교를 사랑하는 것이 됩니다. 야구나 축구에 우승해서 학교 이름을 떨치면 학교를 사랑하는데 큰일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선수가 아니더라도 보건 시간이나 평소에 몸을 건강히 해서 튼튼히 자라는 것도 학교의 명예를 올리는 일입니다.”
▶선친의 창영학교에 대한 애착과 조석기 교장선생님에 대한 존중심으로 우리 3형제는 중앙동(현재 신포동)에 살고 있었지만 가까운 신흥초등학교 대신 멀기만 했던 창영학교를 다녔다. 앞서 나가는 새교육으로 5학년 때는 <뭉게구름>이라는 급우들의 동시를 모은 동시집을 발간했고 6학년 때에는 '창영 어린이' 신문에 여러 차례 글을 실었다. 학교에서는 또 사회생활을 배우기 위해 '어린이 은행'과 '창영우체국'을 만들어 다른 학급 친구에게 엽서를 써서 우체통에 넣으면 다음 날 배달해주는 실습도 경험했다. 동시집 <뭉게구름>과 교내 신문 '창영어린이'에 쓴 글이 활자화되어 나왔을 때의 기쁜 마음이 신문사에서 일하고 평생 글쟁이로 지내게 된 계기가 된 것 같다.
▶1907년이 개교년으로 되어 있던 창영학교는 승정원일기를 비롯해 여러 칙령 그리고 독립신문에 의하면 1896년 2월이 개교년이 되니 개교 127주년이 되는 셈이다. 인천 최초의 공립학교이며 3·1운동의 발상지이자 구국의 상징 강재구 소령 등 수많은 인재를 배출한 창영초등학교를 재개발되는 아파트 단지로 이전하려던 인천 교육청의 근시안적 시도가 교육부와 인천시 그리고 '창영 이전을 우려하는 시민모임'의 반대로 다행히 제동이 걸렸다. 역사와 전통을 소중히 여기는 품격있는 도시 인천을 위해서 더 이상 대결 없이 솔로몬의 지혜로 슬기롭게 수습했으면 한다.
/신용석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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