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2월1일 미얀마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켰다.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 등 정부 고위 인사들이 구금됐다. 시민은 저항했고, 2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 국내에서도 군부에 저항하는 미얀마인들에게 힘을 보태자는 목소리가 커졌고,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2021년 2월26일 시민사회단체 106곳이 미얀마 민주주의를 지지하기 위해 하나로 뭉쳤다. 하지만 이태원 참사 등 국내외에 각종 사건이나 이슈가 터졌고, 시간도 흐르면서 동력이 약해졌다. 시민사회단체들은 새해인 2023년에는 미얀마 민주항쟁이 성공할 수 있도록 '시민힘'을 더욱더 모아야한다고 강조했다.
강인남 해외주민운동연대 KOCO 집행위원장
“시민의 힘 더 모으고 금전 지원 계속돼야…
미얀마 내 한국기업, 인권 우선시해야”
강인남 해외주민운동연대 코코(KOCO) 집행위원장은 “시민사회단체가 2년여 가까이 활동을 계속해 오고 있다”며 “올해 12월 모두가 한 곳에 모여 한국에 있는 시민사회단체와 시민들이 함께 다시 한 번 모여 미얀마의 민주항쟁 결의를 다지기로 했다”고 밝혔다.
강 집행위원장은 “활동 과정에서 무엇을 성취했고, 어떤 것이 부족했는지 논의했다”며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활동을 펼쳐야할 지도 이야기했다”고 했다.
시민사회단체는 우선 미얀마인들의 투쟁을 도울 금전적인 지원을 계속해야 한다고 봤다. 현재 미얀마의 대부분 지역은 붕괴한 상황이다. 지역사회 복원을 위해서 기금을 꾸준히 만들어 시민 생존이나, 싸울 수 있도록 힘을 보태자는 것이다. 그동안 KOCO 등 시민사회단체는 모금활동을 벌여 미얀마인들을 지원해 왔다.
문제는 시민 관심이다. 국제 이슈가 너무 많고 또 국내 이슈도 산적해 동력을 점점 잃을 수 있다는 것이다.
강 집행위원장은 “지속해서 활동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이 무엇이 있을지 고민”이라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그는 이를 위해 미얀마 시민의 투쟁 기록을 모으고 있다고 했다. 미얀마 시민들이 악조건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계속해서 싸우는 모습을 국내에 알려, 도움의 손길이 끊이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는 “미얀마는 계속 싸우고 있다. 여전히 한국 시민들의 지지와 지원이 필요하다는 미얀마인들의 목소리를 알리고 싶다”며 “이 방법이 시민들을 다시 한 번 상기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군부와 결합해 있는 한국 기업들에 대한 경제 제재를 위한 압박을 하고, 근본적으로 해외에 진출한 기업들이 인권을 우선시하고, 이에 대한 책임을 높일 방안을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했다.
강 집행위원장은 “해외에 나가 있는 국내 기업들이 인권을 우선시할 수 있도록 입법 활동에 나설 것”이라고 했다.
시민단체 KOCO(해외주민운동연대)는
해외주민운동연대 코코(KOCO)는 2012년 결성된 시민단체다.
'민주주의는 주민의 협동하는 힘으로 이루어지며, 주민은 협동공동체를 통하여 민주주의를 실현한다', '지원은 가진 자가 없는 자를 돕는 동정과 자선이 아니라 자발적 의무이다' 등과 같은 뜻을 품고 활동 중이다. 미얀마 구데타 발생 이후 미얀마 민주항쟁에 함께하는 8888 공동행동 등 수십 차례 집회 등을 통해 미얀마인들을 돕고 있다.
/이경훈 기자 littli18@incheonilbo.com
안산 거주 미얀마인 미안도씨
“조금 더 많은 관심 필요…비자 연장 같은 실제적 도움 부탁
새해, 일상을 누릴 수 있는 나라를 위해 계속 노력할 것”
“우리는 믿고 있어요. 미얀마에 다시 민주주의가 회복되는 날이 올 거라고. 평범한 일상이 돌아올 거라고.”
안산시에 거주 중인 가명 미안도씨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미얀마에 쿠데타로 세워진 군부 정권이 들어선 지도 2년여가 되어가는 지금,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희망을 말한다. 똑똑하고 강인한 여성이 되길 바랐던 아버지의 뜻대로, 폭력과 억압이 옥죄고 있는 이 순간에도 꺾이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미안도씨가 한국에 발을 처음 들인 건 2019년 봄이었다. 오랜 군부 정권의 통치가 끝나고 잠시 민주화의 싹이 피어나며 먹고 사는 문제가 나아지고, 국제 사회에서의 인식이 좋아져 해외에서의 기회를 꿈꿀 수 있던 꿈같은 시기. 고향 땅을 떠나온 이유도 그러했다.
그는 “독립 국가가 된 1948년 이후 2010년까지 미얀마는 인터넷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 안전하지도, 발전하지도 못한 나라였다”며 “그러다 2015년 선거에서 민주 진영이 압승하며 희망이 싹트기 시작했고, K-드라마에서 듣던 귀엽고 부드러운 한국어를 배우고 나 자신의 발전을 위한 유학길을 떠날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그가 미얀마를 떠나오고 얼마 되지 않아 상황은 180도 변하기 시작했다. 어렵게 쟁취한 민주주의가 다시 한 번 군부의 쿠데타로 무너졌기 때문이다. 길거리를 걷다 물건을 강탈당하고 칼과 총에 위협당하며 집안에서조차 편히 잠들 수 없는 세상으로 바뀌는 데는 2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미안도씨의 상황도 다르지 않았다. 사업을 하던 아버지는 미얀마 경제와 함께 무너지기 시작했고, 함께 일하던 직원을 모두 해고하고 아예 사업을 접어야 하는 상황까지 치달았다.
그는 “스트레스가 극심하셨는지 아버지는 어느 날부터 숨쉬기가 불편하다고 하시더니 갑자기 아프다며 병원에 갔다가 그대로 큰 수술을 하셨다”며 “아버지 곁을 지켜드리고 싶었지만 이곳에서 민주화 운동을 벌였던 게 신고당하면 나도 아버지도 위험해져서 (미얀마로) 돌아갈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실제 미안도씨의 고향 친구들과 지인들은 군부에 반대하는 시민방위군에 가담했다 잡혀갔고, 시위에 가담하지 않아도 '시민군을 도운 것 같다'는 의심만으로 끌려갔다. 미얀마에선 신원불명의 시신이 쓰레기장에서 발견되고, 해외에 나와 있는 미얀마인들의 동향이 군부의 레이더망에 잡히기라도 하면 가족들이 대신 고문당하고 잡혀가며 동네가 쑥대밭이 됐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폭력과 억압은 끝없이 이어졌다. 그러나 항쟁 또한 멈추지 않았다. 미얀마의 청년들은 군부 아래서 교육받을 수 없다며 등교를 거부하고 게릴라전을 이어가고 있으며, 시민방위군은 임시정부 격인 국민통합정부(NUG)와 함께 무기를 확보하고 군부와 맞서 싸우고 있다.
해외에 나와 있는 미얀마인들 역시 다양한 방식으로 지원을 이어가고 있다. 미안도씨도 경제가 무너진 고국에서의 민주화 운동 자금 조달을 돕기 위해 휴대폰 가게와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해 번 돈을 매달 조금씩 송금하고 있다. 학업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언젠가 고향으로 돌아가 미얀마인들에게 필요한 사회복지 활동을 직접 펼치고 가르쳐주기 위해서다.
그는 “한국에서 점점 비자 받기도 어려워지고 군부의 억압도 거세지만 우리 미얀마인들은 언젠가 민주주의가 다시 회복될 거라 굳게 믿고 있다”며 “그러기 위해선 조금 더 많은 관심과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새해에도 우리는 청년들이 미래를 꿈꿀 수 있고, 경제가 살아나고 평범한 일상을 누릴 수 있는 나라를 위해 계속해서 노력해나갈 것”이라며 “한국이 아픈 역사를 딛고 성장한 것처럼 미얀마에도 희망이 살아날 수 있도록 다시 한 번 미얀마를 기억하고, 비자 연장, 자금 지원 같은 실제적 도움도 부탁드린다”고 덧붙였다.
/박지혜 기자 pjh@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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