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서 나고 자라…지역명·소재 활용
남들 무관심 내용·제목으로 창작 고민
등단 20여년 첫 시집…활동 계속 노력
낮도깨비 닮은 홍역이었다
골 깊은 그 마을도 비겨까지 않고
한 집 건너 아이들이 줄줄이 죽어 나갔다
펄떡펄떡 뛰놀던 남동생 둘도 차례로
거적때기에 말려 나갔다
동생 둘을 잡아먹은 독한 년이라고,
외할아버지 할머니의 갖은 구박과
날 세운 눈빛에 온몸이 졸아 들며
아기 새 다릴로 후둘 거리며
하루에도 수십 번 물을 날랐다
(중략)
십년 후 남동생 둘을 보고서
더 이상 물동이를 이지 않아도 되었다
동생을, 자식을, 손주들 업어 키우며
노래처럼 그 시절을 읊조리던 그녀
어깨, 허리 다 무너져 대학병원에서 시술 받고
자동 침대서 긴 요양 중이다
- <내게만 들리는 소리>의 '물동이 이는 여자', 지연경
신체적 조건이 좋은 남자를 대신해 무거운 물동이를 이는 여자. 부계 혈통을 특히 중시하던 과거 사회에서 팽배했던 남아선호사상으로 억압과 차별을 받으며 자란 여자의 고된 삶의 이야기가 '물동이 이는 여자' 짧은 제목에 강렬하고도 단숨에 드러난다.
시집 <내게만 들리는 소리>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지연경 시인은 남들이 듣지 않고 보지 않는 것들을 흘려보내지 않고 포착해 시에 녹여낸다.
“남들이 관심 두지 않는 소재, 사용하지 않는 제목을 써서 차별화되는 시를 창작하려고 새로운 것도 많이 추구하고 고민하는 편이에요.”
인천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는 인천과 관련한 소재도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월미도, 무의도, 원인재 등 인천지역명이 흔하게 등장하며 장소를 아는 사람으로 하여금 상상력을 자극하고 공감대를 형성시킨다.
“시를 읽는 사람들이 자기 일처럼 공감할 수 있는 데에 집중했어요. 사실 우리나라 시가 비슷비슷해요. 그래서 일단 사람들이 공감하며 재미있게 술술 잘 읽히도록 쓰려고 했어요.”
그는 지난 2001년에 등단해 20년 넘게 꾸준히 창작활동을 이어오긴 했지만, 시집 출판은 이번이 처음이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일기를 쓰고 공모전에서는 큰 상을 두 번이나 받기도 하며 한 번도 펜을 놓은 적은 없어요. 학교, 복지관 등에서 강의와 작품 활동을 병행해왔어요.”
한마음 문인협회와 인천 시조 문학회에서도 활동하고 있는 그는 앞으로도 인천지역을 꾸준히 발굴해 새롭게 알게 된 것들이 글로 읽힐 수 있도록 작품 활동을 계속 이어나갈 계획이다.
“사람들이 읽을거리가 너무 많아요. 시, 소설, 평론 등 다양한 읽을거리 중에서 선별해 묶은 잡지를 만들려고 해요. 그러기 위해 끊임없이 소재를 발굴하는 노력을 게을리할 수 없겠죠.”
/글·사진 변성원 기자 bsw906@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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