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영상위 지원받은 첫 장편
성폭력 피해자 생존기에 초점

'정조·순결=선' 가치관 만연
“보편적 공감 가능한 성의식
다음 세대에 성장하길 바라”
▲ 김정은 영화 '경야의 딸' 감독. /사진제공=㈜인디스토리

'오늘 내가 무사한 건 다른 여성이 당했기 때문이다.'

다른 이유는 없다. 단지 여자라서 아무런 과오 없이 성범죄 피해자가 된다.

평범한 그리고 선량한 편인 연수 역시 그랬다. 전 남자친구가 유포한 성관계 동영상 때문에 하루아침에 일상이 형체도 없게 무너진다.

최근 개봉한 영화 '경아의 딸'은 성폭력 피해자 연수가 겪고 살아내는 과정을 촘촘하게 따라갔다.

필연적으로 불편할 수밖에 없는 주제를 두고 특별히 과장하지도 처절하지도 비장하지도 않게 그려낸 건 김정은 감독이 삶을 대하는 태도가 녹아있어서였다.

인천에서 나고 자라 첫 장편에 도전한 그를 만나 영화 제작과 관련된 이야기를 나눴다.

▲ 영화 '경아의 딸' 스틸컷. /사진제공=㈜인디스토리
▲ 영화 '경아의 딸' 스틸컷. /사진제공=㈜인디스토리

▲여성에 관한, 세대에 관한

2018년 '웹하드 카르텔' 사건을 보고 김 감독은 디지털 성범죄에 문제의식을 가졌다. 개인적 피해 사실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사회에서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해 고립되고 2차 피해의 늪에 빠지는 현실을 목도했다.

“교통사고처럼 예고 없이 들이닥친 범죄를 직접 당하지 않았지만 깊이 공감했어요. 능숙하게 대처하고 예견 가능하지 않은 피해의 다양한 모습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데 노력했죠.”

극 중 연수의 직업은 고등학교 교사다. 더 '교육적', 더 '도덕적'이 강요되는 선생님이라서 평범했던 그가 피해자로 전환되며 겪어야 할 일은 특수했다.

김정은 감독은 여기에 연수의 엄마 경아로 대변되는 윗세대와 연수의 과외 학생 '하나'의 다음 세대를 그물로 짰다.

“'경아'라는 이름은 70~80년대 호스티스의 대표였죠. 남성에 목매고 순수의 결정체로 살다가 비극적인 숙명을 받아들이는 캐릭터에요. 연수의 엄마 이름을 이렇게 설정하고 영화 제목 또한 '경아의 딸'로 정한 이유도 그래요. 독립된 주체가 아니라 엄마로부터 비롯돼 성인을 이루지만 여전히 귀속된 정신세계와 그 세대를 직시하고 싶었어요.”

그는 지금의 사회가 변했다고 해도 아직 정조와 순결을 선으로 여기는 구시대적인 가치관이 만연해 있다고 봤다.

“이번 세대는 끊어내야 할 것을 끊어내고 보편적으로 공감 가능한 성 의식이 다음 세대에 성장하길 바랍니다.”

 

▲“인천에 태어난 건 영화인으로서 행운”

김정은 감독은 전작 단편 '막달레나 기도', '야간근무'를 연출하며 전주국제영화제, 런던한국영화제, 청룡영화제, 오사카아시안영화제 등 수많은 영화제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경아의 딸'은 탄탄한 시나리오로 인천영상위원회가 제작부터 개봉까지 과정을 지원하기도 했다.

영화 전반에 걸쳐 화수부두와 소래포구, 인천가족공원, 대건고등학교 등 인천 장소가 등장한다.

“인천은 영화 만들기에 더없이 훌륭한 도시입니다. 과거가 있고 현재, 미래가 공존하죠. 바다와 섬은 더욱 입체적인 작품을 그릴 수 있게 해 줘요. 이번 영화에서도 인천의 장점을 유감없이 활용했답니다.”

/장지혜 기자 jjh@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