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현동 똥고개에서 본 송림동 헐떡고개.

학교에 가던 일터에 가던 매일 고개 하나는 넘어야 했던 시절이 있다. 어렸을 적 친척들이 산 마루턱에 살았다. 둘째 작은아버지네는 동구 송현동 똥고개 중간쯤에 있었다. 지금의 서흥초교 위쪽 언덕으로 1960년대 말까지 온통 배추, 호박, 복숭아 등을 키우는 비탈진 밭이 이어져 있었다. 그 밭에 똥거름을 주었기 때문에 '똥고개'라는 이름을 얻었다.

장교로 복무 중이었던 둘째 작은아버지네 집에는 신기한 미제 장난감이 널려 있었다. 그걸 갖고 놀고 싶어 자주 똥고개를 넘었다.

셋째 작은아버지네는 송림동 헐떡고개에 있었다. 가파른 언덕을 넘으며 헐떡거린다고 해서 그 이름을 얻었는데 지금은 '활터고개'로 지명이 바뀌었다. 셋째 작은아버지는 고개 초입에서 약방을 운영했다. 약 심부름은 내 차지였다.

달짝지근한 구론산 한 병 받아먹는 재미에 자원해서 다녔다. 똥고개와 헐떡고개는 일직선으로 마주 보고 있다. 우리 집에서 약방까지, 똥고개를 넘어 헐떡고개에 다다르기는 아이 걸음으로는 녹록지 않은 경사도의 거리였다. 오르막에는 낑낑거려도 내리막에서는 구르다시피 달려 내려갔던 기억이 있다.

이 헐떡고개 일대가 재개발을 앞두고 있다.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설 예정으로 이미 많은 집들이 이주를 한 상태다. 포클레인의 삽날은 가파른 고개를 여지없이 깎아낼 것이다. 그 어느 아파트단지도 고개의 선형을 그대로 살려서 품은 곳은 없다. 원래대로 생긴 터의 무늬가 깡그리 뭉개진다. 말 그대로 터무니없다. 고갯길처럼 오르막 내리막 하며 비탈진 삶을 살았던 우리네 흔적과 기억들이 모조리 사라진다.

며칠 전 일부러 헐떡고개를 넘어가며 생각나는 대로 인천의 고개를 소환해 보았다. 화도고개, 싸리재고개, 쇠뿔고개, 독쟁이고개. 조개고개, 주원고개, 앵고개, 붉은고개, 아나지고개, 징맹이고개, 장고개, 구루지고개, 사모지고개. 이제 '스무고개'도 남지 않은 듯하다.

/유동현 인천시립박물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