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철거 중인 미추홀구 전도관 재개발 구역

단 하루도 살아보지 않았던 동네인데 고향을 잃은 듯 섭섭하다. 미추홀구 숭의동 전도관구역이 재개발 사업으로 열흘 전부터 철거 중이다. 인천의 수많은 마을 중 '숭의동 109번지'라는 지번(地番)의 이 동네는 유난히 입에 착 달라붙는 그 뭔가가 있다. 마치 그 많은 출생년도 중 유독 '58년 개띠'에게 느끼는 묘한 그 무엇처럼.

인천남중을 다닐 때 송현동 집과 학교 중간에 숭의동 109번지가 있었다. 입학하자마자 급우들에게 그 동네에 절대 얼씬거리지도 말라는 충고를 들었다. 그곳에 들어가면 돈 뺏기고 얻어맞는 봉변을 당한다고 했다. 당시 등교는 시내버스, 하교는 도보로 했다. 그 동네 언덕 골목길로 질러가면 집으로 돌아가는 걸음이 많이 단축될 수 있었다. 그 길이 바로 '쇠뿔고개길'이다.

송현동 아이들은 충고를 받아들여 다른 지름길을 찾아냈다. 일자로 쭉 뻗은 경인철도길이다. 지금의 숭의철교 부근에서 철길로 올라가서 109번지를 멀찍이 두고 창영동 철도건널목까지 레일 위로 걸어가는 길을 택했다. 멀리서 기차 오는 소리가 들리면 우리는 잠시 비켜섰다가 가던 길을 갔다. 얻어터지지 않으려고 목숨을 걸었던 하교 길이었다.

숭의동 109번지의 풍광은 주기적으로 변했다. 인천에서 전국체전이 열렸던 45회(1964), 59회(1978), 64회(1983), 80회(1999) 대회 때마다 집들의 외관이 조금씩 바뀌었다. 공설운동장 본부석에서 그 동네는 바로 코앞에 보였다. 집집마다 다락방을 올렸고 작은 창문을 내 마치 이층집처럼 보이게 했다. 건축학 개론에도 나오지 않는 숭의동표 주택들이 들어섰다. 몇 차례 걸쳐 화장은 짙게 했지만 굵게 패인 주름까지 지워버릴 수는 없었다. 거칠었던 동네는 힘 빠지고 퇴락했다. 한때 '우각로문화마을'이란 산소 호흡기를 달았지만 이내 온기는 사라졌다. 며칠 전 학예사들과 함께 연장을 챙겨 들고 빈집의 나무 대문, 꽃창살, 골목 외등, 각종 표찰 등을 떼 왔다. 이제 숭의동 109번지는 박물관의 유물이 되었다.사진설명 : 철거 중인 미추홀구 전도관 재개발 구역

/유동현 인천시립박물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