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재석 경기본사 사회2부장

안성시 양성면 동항리 양성향교가 있는 조용한 마을이 '임대료(대부)' 문제로 시끄럽다. 주민과 향교 간의 갈등은 지난해 11월부터 촉발됐다. 5개월 넘도록 이어지는 양측의 갈등은 '법적 분쟁' 등 돌이킬 수 없을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그런데도 경기도, 경기도향교재단, 안성시 등 관련 행정기관들은 '권한이 없다'는 이유로 중재에 미온적이다. 지역정치인 누구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다. 주민과 향교 양측이 알아서 하라는 식이다.

이들 기관의 행태는 한참 잘못됐다. 양성향교는 경기도 문화재로 등록돼 있고, 경기도향교재단 산하이며, 조선 시대부터 안성시에 터를 뒀는데도 모두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한다. 주민들은 급기야 이달부터 안성시청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평생 농사지으며 법 없이 살아온 주민들은 어디에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지조차 모르는 안성시민이며, 경기도민이다. 주변 18가구는 예로부터 양성향교 소유 땅에 집을 짓고 살아왔다. 수십 년 동안 관행에 따라 별도의 계약서 없이 쌀이나 일정 현금을 지불하면서 생활해왔다.

2017년에서야 양측이 임대차 계약을 했다. 공시지가 0.3%에 해당하는 금액을 임대료로 낸다는 내용이다. 그러던 중 2019년 향교를 관리·운영하는 전교(책임자)가 바뀌면서 주민과의 갈등을 예고했다. 향교 측이 임대료를 공시지가 0.3%에서 3.0%로 10배 인상한데다가 2년마다 인상안을 조정하기로 결정하면서 주민들의 반발을 불렀다. 향교 측은 아직 주변보다 저렴하다고는 주장하지만, 평생 소작농 등으로 살아온 주민의 체감은 클 수밖에 없다.

18가구 중 17가구가 계약을 하고 연 3.3㎡(1평)당 약 9만7500원(2019년 기준)의 임대료를 냈다. 그러다 향교 측이 임대료 인상 조항에 따라 지난해 11월 임대료를 올리자 주민들이 “임대 계약이 불공정하다”며 반발한 것이다. 향교 측은 재정난을 이유로 운영에 차질이 생기면서 인상할 수밖에 없었다는 입장이다. 주민들은 임대료를 큰 폭으로 올린 것이 잘못이라고 주장한다. 향교 측은 사유재산의 권리행사라며 맞선다. 양측 주장 모두 일리가 있다. 법적으로 따질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다만 양측의 주장이 대화로 해결하지 못할 수준이어서 곪아 터진 것이다. 이럴 땐 행정기관과 상급기관이 나서 적극적으로 중재했어야 옳다.

안성시는 향교 측에 매년 수천만 원의 운영비를 지원한다. 여기엔 경기도비도 포함돼 있다. '안성시 향교 및 서원의 지원·육성에 관한 조례안'에 따라 관리비, 분향비, 기로연비, 향교·서원 활성화 사업 등의 목적으로 지원한다. 안성시의 지원은 기록으로 남은 것만 봐도 40년 됐다. 양성향교가 경기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된 1983년 당시 안성군은 양성향교 명륜당 및 외선문 해체 보수와 내산문 신축에 3000만원을 지원했다. 1985년에는 대성전 신축과 홍살문 설치 및 담장 설치에 3000만원, 90년에는 대성전 단청 계단 3개소 및 배수로 설치 등에 7500만원을 지원했다. 이후에도 보수와 사업비 등에 안성시비와 경기도비, 즉 세금이 투입됐다. 한마디로 안성시민의 세금으로 유지돼 온 것이다.

관계기관이 나서지 않다 보니, 향교 측은 사유지임을 내세워 바리케이드 등으로 마을을 동강 냈고, 서로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 지금 주민들은 할 수 있는 게 없다. 1인 시위에 이어 경기도 민원, 청와대 국민 청원과 함께 양성면 주민 서명을 받고는 있지만, 해결의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안성시의 태도를 보면 향교가 '사유재산' 권리를 주장하는 게 당연한 듯 보인다. 그동안 막대한 세금을 퍼주기만 했지, 향교가 마을을 넘어 지역과 융화하는데 손을 놓고 있던 탓이 크다.

양성향교가 이웃과 어울리지 못하고 사유재산을 운운한다면 안성시가 재정을 지원할 이유가 없다. 안성시 관련 조례안을 제정한 목적은 '향교 및 서원이 안성시의 정신문화와 전통문화 진흥 및 문화도시 조성에 기여하도록 함'이다. 주민과 지역사회는 이번 갈등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안성시의 존재감은 없다고 여긴다. 안성시는 사유재산임을 분명히 밝힌 양성향교에 대한 지원을 당장 끊어야 마땅하다. 또 관련 조례안을 즉시 폐기하기 바란다.

/정재석 경기본사 사회2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