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빈집 옥상에 서 있는 TV 안테나.

모든 집에서 애지중지 대접을 받다가 하루아침에 천덕꾸러기 신세가 된 물건이 있다. 실외 TV 안테나다. 작동하지 않을 뿐,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원도심 골목을 거닐다 보면 앙상한 채 장대에 매달려 있는 모습을 가끔 보게 된다. 걸리적거리지 않고 공중에 걸려 있기 때문에 애써 제거하지 않은 덕분이다.

우리는 한때 지붕마다 안테나라는 '문명'을 세워놓고 살았다. TV를 보려면 실외 안테나를 세워 공중에 날아다니는 전파를 잡아야 했던 시절이 있었다. TV 안테나는 한때 재력의 가늠자이기도 했다. 이른바 잘사는 동네는 집집이 안테나를 세웠는데 마치 잠자리 떼가 날아다니는 광경이 연출되었다. “저것들 다 가짜 아닙네까?” 1972년 9월 남북적십자회담 때 서울에 온 북한 기자는 옥상마다 새까맣게 꽂힌 TV 안테나를 보고 그렇게 물었다. 안테나가 한 동네 혹은 한 나라의 부를 상징했던 때의 이야기다.

안테나는 부러움의 대상이자 도둑을 불러들이는 표적이기도 했다. 집집이 TV 시청료를 받으러 다니던 시절엔 실외 안테나가 결정적 단서였다. 도둑과 징수원의 눈을 피하기 위해 후미진 곳에 안테나를 살짝 걸쳐 놓기도 했다.

바람은 TV 시청의 커다란 방해 요소였다. 비바람 부는 날이면 대나무에 걸린 안테나가 흔들렸고 이어 안방의 TV 화면도 흔들렸다. 심한 경우 방향이 틀어져 버리기 일쑤였다. 그때 가족 중 누군가는 지붕에 올라가야 했다. “어때? 잘 나와?” 안테나를 이리저리 돌리며 아래쪽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쳤다. 방에선 맞고함이 터져 나왔다. “좋아. 아니, 아니 조금만 더…”

김일의 박치기,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 홍수환의 외침, 아폴로 달 착륙 장면, 안방을 눈물바다로 만든 연속극 '여로' 등 TV 안테나가 잡아 준 영상을 보며 우리는 울고 웃었다. 이제 전파 잡을 일 없는 녹슨 안테나는 여전히 솟대처럼 솟은 채 지나간 추억이라도 좇으려는 듯 쓸쓸히 서 있다.

 

/유동현 인천시립박물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