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골목에서 만난 남자가 수집한 돈궤 .
 

 

순간 섬뜩했다. 그도 소스라치게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좁은 골목을 돌아나가다가 모퉁이에서 서로 마주쳤다. 그는 손에 뭔가 들고 있었다. 잠시 놀란 가슴을 쓸어내며 골목을 빠져나가려는데 그가 말을 걸었다. “사진 찍으시나 봐요”

며칠 전 동구 송림6동 일대 골목을 다니며 '흔적'을 찍었다. 수도국산과 마주 보고 있는 산동네로 최근 재개발 이주로 대부분의 집이 빈 상태다. 인천의 여느 산동네가 그렇듯 이곳도 피난민들이 솥단지를 걸고 정착한 곳이다. 피난 이후 처음으로 거처를 옮긴 가구도 적지 않을 만큼 오래된 동네다. 마을 가운데로 기다란 고개 하나가 관통한다. 가파른 고개를 숨차게 넘어다녀 원래 이름인 활터고개보다는 흔히 '헐떡고개'라고 불렸다.

사람들의 체온이 사라진 동네의 골목은 대낮에도 으스스하다. 길고양이의 등장에도 소스라치게 놀라기 일쑤다. 철거 전 빈집들은 화재나 범죄 예방을 위해 자물쇠나 철사로 대문이 봉쇄된다. 간혹 문이 열려 있는 빈집도 있지만 선뜻 대문 안으로 발을 내딛지 못한다. 예전에 부평 청천동 재개발 골목에서 매우 놀란 적이 있기 때문이다. 당시 가옥 형태가 특이했던 빈집에 들어 집안을 둘러봤다. 무심코 방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버리고 간 세간살이 속에 사람 머리가 보였다. 비명을 지르며 뛰쳐나갔다. 마침 골목에 주택조합 관련자들이 있었다. 잠시 후 그 사람들은 그 집에서 머리를 들고 나왔다. 미용 실습용 마네킹 머리였다.

그날 송림동 골목에서 만난 그 남자의 손에 들려 있던 것은 빈 가게에서 주운 작은 돈궤였다. 오래된 골목을 찾아다니며 추억의 '물건'들을 수집하는데 장차 강화의 조양방직과 같은 박물관 카페를 여는 게 꿈이라고 했다.

인천인의 삶의 패총들이 곳곳에 쌓여 있고 인생의 크고 작은 옹이들이 여기저기 박혀 있는 동네 하나가 또 그렇게 사라지고 있다. 헐떡거리며 힘든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 남기고 간 물건들은 이제 한 시대의 이야기를 품은 소중한 '유물'이 되었다.

/유동현 인천시립박물관장